얼마 전 한국에서 법조계 사상 처음으로 혼인빙자 간음죄가 위헌으로 판결이 났다.
요즈음 세상에 사랑한다고, 당신이 나의 마지막 사랑이었으면 좋겠다느니 하면서 우리 결혼하잔다고 그 말을 백 퍼센트 믿고 그 남자를 줄줄 따라 가는 여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전통처럼 내려오던 이 법은 결혼을 미끼로 달콤한 말로 여자들을 유혹했을 때 힘없는 여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었는데 바로 이 법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오래전, 1955년 한국에서 혼인을 빙자해서 70 여명의 여자들을 울렸던 한국판 카사노바 사건이 있었다. 박인수(당시 26세)는 해군 대위를 사칭하면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고위 관료의 딸과 명문대 여대생 등 무려 70여명의 부녀자를 농락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박인수는 언변이 좋고 성격도 아주 다정하여 온갖 달콤한 말로 여자들을 유혹했다. 그 당시 한창 유행했던 댄스홀을 찾은 그는 여자들을 만나는 대로 마구 나꿔 채 농락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세상 물정 모르고 사회 경험도 없으며 교육을 받지 않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유명 대학의 여대생들, 고위층, 부자집 딸들도 여러 명 섞여 있어 당시 사회적 충격이 더 컸다고 한다. 그의 재판에는 재판을 보려는 수천 명의 방청객으로 법원의 유리창이 수 십장이 깨졌을 정도였다. 1심에서 법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명언 ‘법이 보호할 가치가 없는 정조(貞操)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요지로 박인수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항의와 원성에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로 판정이 나서 그는 감옥에 가게 되었다. 이때 벌써 우리의 보수적인 성(性) 문화가 최초로 도전을 받은 때이며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70년대와 80년대쯤에는 의사나 사법 연수생들이 결혼을 약속하고 여자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남자 뒷바라지를 하며 남자는 공부만 하다 아이도 낳고 잘 살다가 어느 날 남자가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는 스토리들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고소만 하면 구속을 하거나 상황에 따라 벌금을 물게 했다.
그 이후로는 실제로 그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의 숫자도 많이 줄고 처벌 수위도 낮아져서 대부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가 늘어났다. 어떤 여성 인권 단체들은 혼인빙자 간음죄라는 말 그 자체로만으로도 여자들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무시당하는 것이며 발전해 가는 이 시대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여자의 인권을 들먹거린다.
물론 몇 개의 나라를 빼고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이런 법이 없으며, 결혼한다고 약속해놓고 잤는데, 또 함께 살았는데 결혼을 안 하고 약속을 안 지키며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물론 철면피이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우리 여자들도 그런 상황 판단을 현명하게 잘 판단할 수 있어야겠다.
누군가 얘기했듯이 법은 원래 남자들이 거의 다 만드니까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했겠지 라고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하기는 세상은 변해가고 요즈음 법대와 의대에 여학생들이 절반을 넘어 간다는데 아직도 우리 여자는 약하고 판단력도 없어서 법으로 꼭 보호해 달라고만 한다면, 그리고 100% 책임은 남자에게만 있다고 얘기한다면 그것도 맞는 것은 아닌 듯싶다.
그래서 인가 그 당시 유행가들은 모두 ‘못 잊을 당신’이나 ‘떠나버린 님’들이니,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법의 질서는 우리나라의 전통 가족 제도를 이어가는 중요한 끈이며 또한 사회 질서를 올바르게 유지해 가는데 중요한 지침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똘망똘망한 젊은이들은 돌멩이하고 다이아몬드를 분별할 능력이 우리 세대보다 훨씬 나으니 미리 미리 미래를 생각하며 결정을 내릴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바람직한 윤리 의식과 성숙한 사회책임 의식도 함께 요구된다. 그래도 어떤 경우는 강제적이나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는 상황에 따라 법으로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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