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를 가르치신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는 소식에 많은 분들이 애도를 표하였다.
내 삶이 내 소유가 아니요, 순간순간 최선을 다 할 때 최대한의 질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치신 훌륭한 분이시다.
우리가 결코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번 쯤 다 들어보고 “말 된다”고 생각하고 마음 속 어디엔가 저장해 놓았을 말씀이다. 성경에서도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극히 평범한 진리 속에 참 진리가 숨어있고 내일을 바라보는 눈이 열림을 볼 수 있다.
한 인간의 삶을 평범하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다가 그냥 가야만 하는 그런 무력한 삶인 줄도 모른다.
허나 내게 주어진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당연 우리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와 나눔 속에 진리를 찾으시고 그렇게 살다 가셨으니 분명 성공한 삶이요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는 삶을 살다 가신 것이다.
또한, 빌 게이츠나 웨렌 버펫처럼 많은 것을 소유하되 나누고 사회에 환원하며 큰 일들을 해 나갈 수 있는 삶을 살아 갈수 있다면 그 또한 성공한 삶이라 생각한다. 무소유를 주장 하시는 법정 스님도 많이 소유하고 많이 나누는 웨렌 버펫도 결국은 다 “날 비우고 우리를 소유하라” 는 말일 것이다.
많은 것을 소유했는지 안했는지의 문제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결국 소유나 무소유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정신적 무소유가 내 마음을 비우게 하고 내 중심의 삶에서 우리 중심의 삶을 볼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정신적 무소유는 경우 없이 가난에 편들지도 않고, 권세에 아첨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공의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이라고 하셨던 법정 스님.
나 라는 주제에서 우리 라는 주제로 삶을 바꾸기를 주저 않으셨던 친절하셨던 법정스님.
친절한 마음도 사랑 없인 아니 되고 주는 마음도 사랑 없이는 아니되니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먼저인 것 같다.
이제 내 인생의 반이 지나다 보니 내가 그토록 옳다고 믿었던 일도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저럴 수는 없다고 믿었던 일들도 저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의 모든 초점을 나에게 맞추고 살다보면 나 외에 다른 어느 사람도 보이지 않으며 내 생각과 틀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보는 친절한 눈을 열어야 한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이 나와 틀리다고 무조건 비방하고 앞서가는 것은 금물이다. 그 다른 모든 생각들이 오늘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나 자신보다 남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남의 행복을 기뻐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 그래서 나에서 우리로 만들어가는 세상의 주역이 되고 싶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의 향긋한 봄 내음을 맡을 생각에 오늘도 마음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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