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눈이 특별히 많이 내렸고, 비도 잦아 강수량이 풍부한 해가 될 것 같다. 산보하다 보면 길가에 쓰러진 나무들이 많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누워 버린 것일까? 지구가 살아보려고 용트림을 치는 통에 한대 얻어맞은 것일까? 강진이 아이티와 칠레에서 발생했고 연속된 쓰나미가 하와이와 일본까지 놀라게 했다. 또 어디서 어떤 용트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인류 문명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자연의 도전에는 무력하다. 한 도시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고 수많은 인명이 사라지는 일들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아이티의 수도 포토 프랜스는 아직도 지진의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존자들은 아직도 천막에서 어려운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 각국에서 온 구호품은 어디로 간 것일까? 부자가 대를 이어 군부독재를 한 이 나라는 지도자 운도 없는 모양이다. 가난하지만 순박한 이들에게는 아주 가혹한 자연의 재앙에 부패한 지도자의 재앙까지 겹친 것이다. 지난 2월 21일 포토프랜스에 내려서 본 아이티는 공항부터가 60년대 한국의 모습보다 못해 보였다.
수도에서 경비행기로 서쪽 40분 떨어진 제레미라는 소도시가 내가 의료봉사를 다녀온 지역이다. 일주일 간 머물면서 한의사 2명이 무려 100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했다면 믿을 수 있는 일일까? 전기도 없는 탓에 새벽 닭 우는 소리에 깨어서 조반을 먹자마자 숙소로 밀려닥치는 간질병 환자들, 진료소가 따로 없어서 초등학교에서 쓰는 긴 의자를 일렬로 늘어놓고 한번에 10명씩 앉혀 놓고는 일렬로 침을 놓는 시술은 난생 처음 경험하였다. 해가 떠서 침을 들고 해 져서 침을 놓을 때 까지, 소변을 한 번도 볼 새가 없을 정도로 아픈 이들이 몰려 왔다면 이곳이 얼마나 심각한 의료 무풍지대 인가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머리에 짐을 지고 다녀서 인지, 목, 허리, 무릎, 발 등이 아픈 환자들이 제일 많았다. 지진으로 다친 환자들도 더러 있었고, 음식이 충분치 않아서 인지 위장 질환도 많았다. 비포장 도로를 맨 발로 다녀서 인지, 발바닥은 곰 발바닥처럼 두툼하여 행여 발바닥에 침을 놓을 때는 가장 굵은 침으로도 뚫고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가능하면 많은 이들에게 한방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정확히 맥보고 진찰하여 근본을 치료해야 하건만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단지 간호사가 적어주는 증상만 보고 침을 놓으면서 통역을 통해서 환자의 반응을 보는 식으로 진료를 하였다. 다행히도 나의 스승인 홍성원 박사께서 지난 7년간 이 지역에 의료봉사를 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홍 박사님은 이지역의 모든 풍토병과 질환을 훤히 꿰뚫고 있어서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을 즉석에서 치료해서 효과를 보게 하는 경이적인 시술을 보이셨다.
80도가 넘는 열대 더위, 끈질긴 모기떼들과의 싸움은 또 다른 과외활동이었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어깨 부위가 근질근질한 것은 모기에게 뜯긴 결과이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최고의 문명국에서 극빈의 섬나라로의 여행은 많은 것을 보고 깨닫게 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한 가지 가장 확실한 것은, 언제 어느 곳에 있든 사람들은 통증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을 가장 소망한다는 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