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봄이 초여름 문턱에 다가섰다. 눈 속에 일찍이 핀 봄꽃들은 봄과의 이별을 서러워하는 듯 낙화한다. 꽃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며 평안하고 은근하며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 한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얼굴을 찡그리거나 나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더욱이 아름답고 고운 향기를 발하는 꽃엔 다소곳이 다가가서 코끝을 꽃잎에 들이대고 그 향기에 취하곤 한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제각기 아름다움을 뽐내며 미소로 사람의 감정을 유혹한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정원에, 화단에, 방안에 꽃을 가꾸며 그 아름다움을 관상하며 사랑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고운 꽃을 혼자 보고 즐기려고 꺾어 가는 사람들을 본다. 물론 꽃을 너무 사랑해서 행한 일이겠지만 이 얼마나 개인적이고 독선적인 행동인가? 그래서 나무에 상처를 주고 꺾인 꽃은 몇 날 가지 않아 시들어 죽게 하는 서글픈 일들 말이다. 이런 일은 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욕심만을 위해 다른 사람의 관상할 권리를 빼앗는 잘못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내외는 출석하는 교회가 멀어 거의 날마다 가까운 이웃 교회에 새벽기도를 나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이웃 교회로 가는 길 양 옆에 십 수 년 되는 잘 생긴 두 그루 자목련 나무가 정답게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매년 이른 봄이면 여느 꽃보다 서둘러 아름답고 복스럽고 탐스러운 보라색 고운 꽃이 활짝 피어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지난봄에도 꽃가지가 휘도록 소복소족 만개했었다. 그런데 지난 늦여름 폭우와 함께 몰아친 태풍에 한 쪽 목련나무의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다. 부러진 나뭇가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통곡하는 것 같아 마음속으로 여간 안타깝지 않았다. 이젠 저 부러진 가지에서는 다시 화려하고 해맑은 목련꽃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 한층 허전한 마음이 다가 왔다. 다정한 친구와 영영 이별한 것 같은 서운함과 서글픈 생각이 마음을 조여 왔다.
며칠 짓궂던 날씨가 개었다. 태풍에 부러진 가지는 그대로 땅에 기댄 채 신음하고 있었다. 오늘은 새벽기도를 끝내고 부러진 목련가지를 접하고 싸매주어야지 생각했다. 기도를 마치고 아파트로 올라오는 길에 목련나무 앞에 이르러 깜짝 놀랐다. 그새 누군가가 부러진 가지를 바로 세우고 빨간 나일론 줄로 칭칭 야무지게 동여매어 놓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가지에서 다시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일을 한 고운 손길에 고맙게 생각하며 감사했다. 누가 이른 아침에 이런 좋은 일을 했을까? 그 아름다운 마음씨와 이렇게 단단하게 정성껏 싸매 놓은 고운 손의 소유자가 어떤 분일까? 무척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
그러나 곧 그 일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대로 세월이 지났다. 시나브로 계절이 바뀌어 봄이 찾아 왔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생겨났다.
지난 겨울 그 엄청난 폭설에 많은 나무들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쓸어 지고 부러졌는데도 두 그루의 목련은 상한 데 없이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몽우리 트고 고운 보라색 꽃술을 활짝 펴, 지난 봄 보다 더 아름답고 탐스러운 많은 꽃을 피웠다.
꽃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과 고운 손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그 선한 행위가 올 봄에도 만개해 많은 사람들의 눈을 즐기고 아름다운 목련꽃을 볼 수 있게 했다. 나는 이 아름다운 목련 꽃을 보며 다시 한 번 수고한 고운 손길위에 진심으로 깊은 고마움을 마음에 새긴다.
무슨 일이든지 들어나지 않는 한 사람의 수고와 희생의 고운 손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 진작 내가 먼저 싸매주지 못한 목련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처다 보기 쑥스러웠다.
kjl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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