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애우 집사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요즘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은 “괜찮습니다”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사실 아픈 곳이 있어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대답하시냐구 물으니, 아프다고 이야기 하면 “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 “언제부터 아프셨는데요?”, “약은 드셨어요?” 등등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것보다 형식적인 질문에 답하기가 힘들어서 처음부터 그냥 괜찮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딘가 아플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형식적인 질문으로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어딘가 나보다 부족한 사람일 것이란 생각을 마음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화를 “괜찮습니다”로 끝내버린다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가 장애우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집사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한 집사님으로부터 이규연, 박승일님이 지은 ‘눈으로 희망을 쓰다’라는 책을 전해 받게 되었다. 요즘에 와서 매스컴을 통해 병명이 겨우 알려지기 시작한 루게릭병, 그 병과 맞서 싸우면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박승일님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함께 사회가 가진 편견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장애우들과 함께 여러 날들을 보내면서 많은 장애우와 그의 가정들을 보아왔기에 그 뒤에 숨겨진 아픔과 눈물이 마음으로 그려졌다.
책에 쓰인 많은 아픔의 표현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전쟁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들, 그 아픔과 고통의 시간은 아마도 박승일님 한 사람의 아픔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시간도 수많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고통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이겨 나가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고통의 시간이 몰려올 때 그것을 인정하며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지는 체험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면, 모두 죄 때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죄책감으로 몸의 장애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 심한 경우가 있다. 또한 몸으로 겪는 장애도 힘에 벅찬데, 보다 더 큰 아픔과 고통은 장애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의 표현들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그들을 대하거나, 무조건적인 동정의 표현으로 당황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허다하기에, 정작 장애우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은 몸보다 마음에서 더 많이 싸우고 견뎌야 한다.
육신의 건강을 가졌음에도 실패와 좌절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남을 원망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사람에 비해, 마지막까지 죽음과 싸우며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한 요양소 건립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인 눈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박승일님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를 이 사회가 모두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와 같은 고통을 가진 누군가를 위해 내 마지막 시간을 모두 바쳐서 진정한 인생의 행복과 의미를 찾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건강한 사람도 감히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책의 첫 장을 펴는 순간 눈에 들어오던 글귀가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불과 몇 밀리미터에 불과한 모기가 위풍당당하게 힘껏 내 피를 빨아들이며 만찬을 즐긴다. 하지만 농구 코트를 날아다니던 2미터가 넘는 큰 키도 이젠 작은 벌레 앞에서 꼼짝할 수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을 동정으로 바라보는 눈도, 안쓰럽게 던지는 위로의 한 마디도 아닐 것이다. 진정, 그가 우리에게 던지고자 하는 그 마음의 언어를 이제 우리가 나서서 말로 행동으로 표현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이 세상에서 절망과 포기와 아픔의 소용돌이 속에서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많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제는 같은 인생의 길을 걷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는 일부터 시작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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