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後園) 잔디밭 오른쪽 섶에 중남미 고원(高原)에 위치한 칠레(Chile)처럼 가늘고 기다란 길이 약 10미터, 폭이 약 1미터가 되는 곳에 어머님의 장독대를 만들었다. 하늘 높이 솟아 오른 대목 밑에 적당하게 잘 자란 덕우드(Dogwood)가 공중에 우윳빛 꽃을 두둥실 띄우고 있고, 돌밭(집 건축할 때 기초로 쓰고 남은 돌)을 중심으로 자귀꽃, 배나무, 보라색 목련꽃이 삼형제처럼 지켜보고 있는 곳에 어머님의 장독대를 만들었다. 이 계획은 겨울 눈 내리기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소록소록 눈이 내려 하얀 베레모를 쓴 크고 작은 항아리를 연상하며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시던 어머님이 그리울 때면 언제나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제 신록이 한창이다. 조금 있으면 장 담그는 절기이다. 나름대로 나는 장독대 주위를 정리하느라 부산하다. 주중 3일간의 오전은 늦깎이 공부하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간단한 점심 식사하고 락빌에 있는 서울의 명동같은 느낌의 거리, 젊은이와 함께 수다를 떨며 함께 젊음을 호흡하는 재미에 시간의 흐름이 금쪽같다.
지난 주와 이번 주는 더욱 바쁘다. 값싸고 마음에 드는 간단한 펜스(Fense)를 어머님 장독대 주위에 치기 위해 존슨스, 홈 디포, 벤끼 등을 고루고루 다니며 조금씩 씨앗까지 구해서 왔다.
어머님의 장독대가 꾸며진 땅은 해 묵은 땅이 아니고 해마다 쌓인 낙엽 긁어모아 엉성하게 형성된 토질이어서 토양이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런대로 가끔 비도 맞고 물도 뿌리고 발로 꾹꾹 밟아 땅을 다지고 했는데 너무 일찍 뿌려 둔 메밀꽃, 코스모스는 가을이면 어머님 장독대 주위를 수려하게 수놓아 주리라 지금부터 즐거운 상상을 한다. 비가 오는 오후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씨 뿌린 나팔꽃은 벌써 떡잎이 나왔는데 조롱박, 메밀꽃, 코스모스는 아직 소식이 없다.
그리고 시골 장독대에 빠질 수 없는 접시꽃도 심어야지. 몇 년 전 의대 후배가 정성껏 길러 화분째로 가져다 준 짙은 보랏빛 빌로드 같은 접시꽃, 아침저녁으로 보살피고 길렀는데 하루아침 일어나보니 위에서부터 사슴이 와서 똑 따먹어 버린 후 가슴 저려 한참을 미련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심어야지.
어제는 장독대 주위 잔디가 있는 쪽에 새로 사온 펜스를 쳤다. 한쪽은 약간 깊고 비가 많이 쏟아졌을 때만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같은 옆집과의 사이에 비스듬히 누운 외나무다리가 있어 펜스를 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란 다리 가진 사슴들이 훌쩍 뛰어 올라와 메밀꽃 한들한들 흔들림을 보기도 전에 야금야금 먹어 버릴 것 같아 바람에 부러진 나뭇가지 주워와 울타리를 만들었다. 잘라 낸 가지 중에 덩굴 종류가 있어 둥글게 휘어진 것을 그대로 이용했다.
다 해놓고 보니 아무래도 사슴이 그 속을 뚫고 들어 와 꽃을 먹어버릴 것 같은 걱정이 든다. 그러나 서커스 할 때의 불꽃원은 아닐지라도 둥근 원을 뚫고 들어와 꽃을 다 먹어 버린다면 그것은 분명 곡예하는 사슴이리라. 그전까지야 막을 수 없지 않을까, 두고 볼 일이다.
앞뜰의 황금빛 모란, 그 모진 겨울 다 견디어내고 지금 꽃망울이 풍년의 밤톨만 하다. 활짝 피면 너무 무거워 화두(花頭)가 부러질까 나뭇가지로 받침을 대고 있는데 함께 있는 두 살, 네 살의 손자 손녀가 나서서 할머니를 돕겠다며 깔깔대며 즐거워하고 있다.
초록색 일색의 잔디밭, 드라이브웨이 맨 끝에 있는 램프 포스트(Lamp Post), 밤길에 뱃길을 인도하는 등대처럼 소나무 가지에 반 가려진채 명멸하고 있고 그 밑에 어린 나무 휘어 만든 일본 단풍나무가 희한한 곡선을 자랑하고 있다.
조금 더 있으면 금년에도 또 제비가 날아 와 녹색 잔디 위를 비상하며 짝 지어 우리집 나바론 요새에 집을 짓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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