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황홀하기 그지없는 일 년 중 제일 아름다운 계절에 멀리 고국에서 친구가 그렇게 오고 싶다던 내 집에 사위와 손녀딸을 대동하고 왔다.
대학교수 연구원으로 온 사위와 대학생인 손녀 유학 뒷바라지 한다고 따라왔다는 친구는 세월의 흐름에 그다지 변하지 않은 모습에 만남이 좋기만 하다.
우린 여고시절 나의 오빠 단짝 친구의 여동생으로 나와는 상반된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을 지닌 문학 소녀로 오빠의 소개로 알게 된 만남이었다.
오빠 다섯에 막내 외동딸인 친구는 연로하신 어머니의 소원대로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신혼여행 다녀온 지 보름이 막 지나는 날, 갑자기 심한 복통을 일으켜 급히 병원에 입원하게 된 남편. 맹장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하는 도중 뜻밖에도 위암이 발견되었다.
그것도 시한부 말기 위암 선고라니 이 무슨 날 벼락인가. 다섯 오빠들은 어떻게 동생이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인가 의견이 분분했다. 그때의 심정은 어느 누구도 이해 못하고 어떤 위로도 다 섭섭하게 들렸단다.
운명적으로 다가온 최악의 상황을 왜 하필이면 나에게 주셨나 신을 원망도 했지만, 아내인 내가 아니면 누가 그이를 지켜주나 하는 생각이 뇌리에 번득 스쳐가자 남편이 너무 가엾어 눈물 삼키며 마음을 다 잡았단다.
아기를 낳고 살얼음판을 걷듯 지내는 날 속에 남편의 병이 다시 고개를 번쩍 들었고 혼신을 다한 병간호에도 기적은 없이 그 토록 좋아하는 생후 9개월의 딸아기 재롱도 외면한 채 가족의 품을 떠나갔다.
공허한 가슴을 부여잡고 남편의 묘지위에 엎어져 꺼억꺼억 울며 짧았던 부부애를 떨쳐버린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는 친구. 9개월 된 딸과 앞으로의 진로에 고민하다 양품점을 운영해보기도 했고 보험회사를 이어 학창시절에 꿈꾸던 글쓰기 취미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서점도 운영해 보기도 했다.
딸아이를 오빠네 집에 맞기고 허둥대둥 바삐 보낸 많은 시간 속에서도 딸아이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로 커갔다. 두뇌도 명석해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흐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로 성장한 딸.
어린나이에 시작한 피아노가 적성에 맞아 피아노 강습비 때문에 몇 번이고 도중하차를 의논했지만 기필코 음대로 진학하겠다는 딸의 강한 의지대로 엄청 경쟁이 심한 K대 음대(피아노)에 거뜬히 합격했다.
“자식에게 고기를 갖다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탈무드의 자녀교육법을 터득하며 어느 날 부터 친구는 딸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생활 수단으로 피아노 교실을 차려야겠다는 일념에서 밤낮으로 피아노 건반에 열 손가락이 다 헤지도록 쳐댔고 어느 정도 실력이 쌓아지자 피아노 4대를 구입 후 피아노 교실 간판을 걸었다.
기초 학생은 엄마(친구)가 가르치고 딸과 함께 열심히, 학원의 명성이 높아지자 두 명의 선생을 더 고용해 대대적인 피아노 교실을 늘려갔다. 4년 후 딸이 음대 졸업식 날, 밤낮 쉼도 없이 피아노 선생으로 또 교회 반주자로 봉사하면서 갖은 고생을 마다않고 엄마를 따라준 딸의 일상들이 주마등같이 스쳐가 졸업장을 놓고 모녀(母女)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내 친구.
착실한 청년을 만나 결혼하고 후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시립교향악단의 반주자로 활동한 딸. 이제는 엄마의 방파제 역할을 늠름하게 감당해주며 마음속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 주고 있는 아들 같은 든든한 사위도 있고, 사랑스러운 고등학생 손자와 대학생인 손녀를 둔 할머니로 여유 있는 삶을 즐긴다는 친구가 웃음 짓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삶의 그림자를 밟으며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한편의 영화처럼 힘들고 고독한 삶 속에서도 이웃의 정들이 삶에 울어나는 고마운 오색줄을 엮어주었기에 오늘이 있음에 감사도 잊지 않는다.
창 너머 그리움을 부르며 커피 한잔을 건넨 시간들을 남겨놓고 떠나가는 친구를 배웅하면서 난 진한 우정의 눈물이 한없이 가슴에 젖어옴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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