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반 동안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듯이 아슬아슬한 순간들뿐이었다. 이러다간 아무래도 무슨 일이 날 것이라는 예감이 결국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현실화되고 말았다. 각종 억측과 의혹은 최종 진상조사 보고가 발표돼도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폭되고 있음을 본다. 최종 발표와 동시에 해외동포들과 국내 각계각층 시민사회 종교단체들은 한결같이 공신력 있는 조사팀의 재조사와 북한의 남북합동진상조사 제의를 받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북풍’ 중단과 경제위기를 몰고 올 군사적 대결을 즉각 중단할 것도 요구하고 나섰다. 이윽고 국민은 ‘전쟁지지와 전쟁반대’로 양분돼 남남갈등의 소용돌이로 휩싸여 들어가고 있다.
업무차 워싱턴에 나타난 샤프 주한 미군사령관은 “북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곧 그는 업무를 중단하고 쏜살같이 서울로 귀대했다. 그래서 미군 측에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라는 의혹을 낳았고, 그것이 천안함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된 용트림 바위 부근 제3부표에 대해서도 KBS와 여러 언론들이 보도했으나 즉시 중단 압력을 받았다. 이것은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윽고 5월 20일 사고가 난지 근 두 달 만에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정부는 남북교류 교역을 전면 중단하고 국제적 대북압박에 나서겠다며 초강경 자세를 보이고 나섰다. 이에 맞서 북은 남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전 군에 비상경계령을 선포했다. 드디어 남북관계는 일촉즉발의 최대 위기로 접어들었다.
전쟁을 결사반대하고 중재를 해야 할 미국이 오히려 전쟁을 다그치는 서울 정부에게 손벽을 쳐주고 있으니 노벨 평화상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우리 민족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볼 때에 ‘분단’과 ‘휴전’을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방치해 두고 있다는 것은 미국의 양심을 의심케 한다. 한반도 평화 부재가 서해 참사의 원흉이라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평화체제 전환에 소극적이던 미국이 천안함 비극과 무관하다고 발�해선 안 된다. 벌써 한, 미, 일 선거와 특히 일본의 후텐마 미해병대 기지 유지를 위해 이번 천안함 사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겠다는 미국의 저의가 엿보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래선지 오바마의 국제외교가 부시를 뺨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미 영국의 주요언론 중의 하나인 가디언(Guardian)은 부시의 ‘멍청한 전쟁’에 비판을 가하던 오바마가 또 하나의 ‘멍청한 전쟁’으로 가는 움직임(서울의 전쟁준비)을 지지한다고 꼬집었다. 아마도 ‘북한’이라는 존재는 한, 미, 일에게 “필요한 악”으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모양이다. 으레 선거철이나 필요하다면 언제나 북한카드를 끄집어내서 ‘꽃놀이패’로 요긴하게 써먹는다.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남북협력과 평화번영시대,’ 안보소동 없는 평온 속에서 그저 신명나게 일만 하면 됐던 바로 그 시절이 그립기 짝이 없다. 전쟁 일보 직전으로 몰리고서야 김대중, 노무현 전직 두 대통령의 가치를 더욱 절감케 된다. 우리는 이제 ‘전쟁이냐 평화냐’ ‘죽느냐 사느냐’의 쌍갈래 길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한반도에 쌓인 화약고가 터지면 남이고 북이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공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 가보다.
미군 주도의 한미합동훈련 중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미국이 압도적 국민이 갖고 있는 의혹을 말끔하게 푸는데 적극 협력해야 한다. 미국은 서울 정권의 편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편에 서서 양자택일해야 한다. 미군이 가진 결정적 천안함 침몰 자료를 공개하던가 아니면 북한의 진상조사팀을 지체 없이 받아들이도록 서울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물론 미군 핵잠수함 근거지의 제3부표에 대해서도 당연히 해명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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