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학교 마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을 차고 있었다.
공이라야 새끼줄을 둥글게 말은 다음 노끈으로 꽁꽁 묶은 그런 공이었다. 지금 칠팔십대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경험상으로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면사무소 쪽에서 ‘지이잉 지이잉’ 징 소리와 ‘꾀대대댕 꾀대대댕’ 하는 꽹과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조금 있더니 학교 선배 형들과 어른 한 분이 뛰어오면서 “얘들아 빨리 면사무소로 모여라”고 외치고는 급히 달려가며 “면사무소로 모이시오” 면사무소로 모이시오” 소리를 지르고 다녔다. 그 때가 아마 오후 두시쯤인 것으로 기억된다.
면사무소에 가보니 뜰에 꽤 많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어떤 청년들은 육모 방망이처럼 생긴 방망이를 들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낫과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지서로 가자. 지서로 가서 지서장 그 친일파 놈을 죽여버리자”고 소리를 지르자 아까부터 나무에 기대 서서 우는 듯한 얼굴로 씩씩대고 있던 한 청년이 “가봐야 소용 없네. 벌써 도망갔다네. 내가 지서문을 박차고 들어갔을 때 그는 이미 없었고 홧김에 아무 죄도 없는 소사 녀석의 귀싸대기를 두어 대 갈기니 소사 녀석이 “빨리 뒷문으로 나가 강쪽으로 가보세요” 하기에 강으로 달려가 보니 그는 벌써 헤엄쳐서 강을 거의 다 건넌 상태였다는 것이다.
“자 자 좀 조용히들 하세요.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이제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되었으니 그것을 축하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누구 축하 연설할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까. 저기 저 권 선생 나오시오. 당신 서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아니오. 그리고 선친께서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신 분 아니오.” “아 아닙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소개령에 의해서 이 동네로 이사 온 나그네요 . 선친의 독립운동도 그저 말단에서 조금 돕다가 성공도 못하고 잡혀 돌아가셨을 뿐입니다.”
“아 그럼 면장에게 부탁합시다.” 그리하여 면장 사무실에서 초조한 모습으로 쭈그리고 앉아 있던 면장이 당황한 표정을 하고 끌려나왔다. “여러분, 왜 이러십니까. 잘못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죽을 죄를 지은 줄을 알면 연설을 한 번 멋지게 잘해 보시오.” “에에 저어 여러분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독립을 축하합니다. 아니 독립을 축하 합시다. 우리 다 같이 만세를 부릅시다. 제가 선창하겠습니다. 따라들 하십시오. 조선 독립 ‘반자아이 만세에,’ ‘반자아이 만세에’.” “아 잠깐 여러분 잠깐만. 아니 지금 당신 뭐라고 불렀소. 반자아이? 당신 정말 죽고싶어?” “아니 제가 ‘반자아이’라 했습니까?” “다시 불러 이 친일파새끼야.” 이런 촌극 끝에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의 첫 번째 독립 축하식은 무사히? 마쳤다.
“자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요?” “두레패를 앞세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돕시다. 모두 악기를 잡아요.” 이렇게 해서 젊은이들은 박씨네 양조장에서 내놓은 막걸리와 또 다른 박씨네가 급히 만들어 온 설익은 떡을 몇 개씩 먹고 징 소리 꽹과리 소리 높이 농악을 연주하며 자리를 떠났고 몇 몇 유지들은 남아서 임시 ‘면운영회’를 조직하고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았다.
임시 치안대를 조직한다. 한글 반을 조직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역사반을 조직하여 우리 역사를 가르친다. 우리 노래를 가르친다. 동네 초입 신작로에 솔문을 세운다 등등.
비록 어렸을 때 일이지만 65년 전 그 때 그 징 소리와 꽹과리 소리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또 한 번의 징 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울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그 날이 내 생전에 찾아올 것인가. 아 통일의 그 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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