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3일 경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회원국들이 경상수지 관리 목표를 정하고 경쟁적인 통화절하 경쟁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환율전쟁’이 무역전쟁으로 번지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를 덜면서 세계 경제가 성장 동력을 되찾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미 달러화는 약세를 지속하고 엔화 등 아시아 주요국들의 통화는 강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중국 등 경상수지 흑자국들은 미국의 대외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수출에 힘입은 고속 성장보다 내수 확대에 나설 것으로 관측됐다.
◇G20, 新국제통화체제 기틀 마련
24일 기획재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경주 G20 장관회의 코뮈니케의 핵심은 "경상수지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정책수단을 추구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특정 국가의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는 세계경제의 균형 성장에 바람직하지 않을 만큼 그 규모를 적정하게 관리하는 데 공조하자고 선언한 것이다.
이번 경주 코뮈니케는 경상수지 적자의 조정 문제만 다룬 브레튼우즈체제와 달리 경상수지 흑자에 대해서도 조정하기로 합의해 새로운 국제통화체제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경제사적 의미도 갖는다.
다음 달 11일 열리는 서울 G20 정상회의 등을 통해 회원국은 ‘지속가능한 수준’의 경상수지 규모와 관련한 ‘예시적(indicative) 가이드라인’에 대해 합의할 예정이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경상수지 흑자나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몇 % 수준이라고 제시하는 수량적 기준은 담기지 않는다. 대신 연령별 지표나 산유국과 비산유국, 무역 및 해외투자 집중국 등으로 세밀하게 분류해 과도한 불균형의 완화를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주 코뮈니케에서는 대규모 자원 생산국(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포함해 회원국과 지역이 처한 상황을 고려할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밝혀 일부 예외를 인정했다. 또 예시적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는 대규모 불균형(경상수지 흑자)이 지속되는 국가에 대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에 평가를 하도록 요청한다는 보완장치를 뒀다.
아울러 경주 코뮈니케에서는 "시장 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 절하를 자제하자"는 내용을 담는 데 성공해 지난 6월 토론토 정상 선언의 ‘시장지향적인 환율’에서 한걸음 나아갔다.
‘시장 지향적’인 환율이란 시장에 맡기되 필요하면 개입하겠다는 뉘앙스지만 ‘시장 결정적’으로 그 수위를 높임으로써 상당 수준의 개입은 자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기축통화국을 포함한 선진국에도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을 경계한다’는 책임을 지워 신흥국이 겪는 외국자본 유출입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美 실리..아시아 통화강세 지속, 내수확대 힘쓸듯
전문가들은 일단 G20 경주회의의 합의 결과에 따라 최근 각국이 앞다퉈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쟁은 약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무엇보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이 가장 큰 실리를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시장 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시장 개입이 어려워지면서 중국의 위안화 절상 수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대외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중국 등 경상수지 흑자국들은 수출주도형 고속 성장보다 내수 확대에 더 무게를 둘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미국은 저축률을 높이고 개방경제를 유지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G20 재무장관 회담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중국은 본격적으로 야심찬 국내 개혁에 나서고 있으며 예전처럼 더는 수출주도형 성장에 의존 못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위안화 절상 속도를 빠르게 이끌고 있고, 진전이 계속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시장 결정적인 환율제도 이행 합의로 중국 등 아시아국가들의 외환시장 개입 명분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현재의 달러화 약세 기조와 중국.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통화절상 압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화 역시 강세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오석태 SC제일은행 상무는 "시장 결정적인 환율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부 개입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디플레이션(물가가 하락하고 경제는 침체에 빠지는 현상)에 허덕이는 일본 역시 엔화 값이 역대 최고 수준인 달러당 79.75엔에 근접한 상황이지만 이번 합의 이후에도 강세 흐름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됐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회의에서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시장 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 절하를 자제한다’고 합의한 것이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을 어렵게 만들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엔화를 풀고 달러를 사들이는 식의 외환시장 개입이 단행되면 국제사회의 시선이 차가워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용택 KTB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전쟁으로까지 표현되던 마찰 국면은 당분간 잠복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견조한 엔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경주 합의는 우리나라 통화정책에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환율전쟁이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이달까지 기준금리를 연 2.25%로 3개월째 동결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합의로 환율 문제와 글로벌 불균형을 둘러싼 대립각이 줄었다"며 "그런 측면에서 과거에 비해서는 (통화정책 결정의) 불확실성이 줄었다"고 말했다.
현대증권은 김 총재의 발언에 비춰볼 때 11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 양적완화와 中 환율절상 의지가 변수
그러나 이번 경주 합의가 환율전쟁의 종식으로 이어질지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번 회의에서 위안화 추가 절상과 관련해 명시적인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중국이 최근까지 보여준 급격한 위안화 절상 흐름을 지속할지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HSBC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환율 갈등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구체안이 도출된 상황이 아닌 만큼 여전히 갈등 상황이 악화할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상도 "엔고 현상이 장기화하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환율정책에는 변함이 없으며 엔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칫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 성명이 선언적 수준에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회담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양적 완화(유동성 공급) 수준과 중국의 위안화 절상 의지가 세계 경제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윤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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