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하나가 술자리에서 희망 찾아 선택한 곳이 미국이라며 이민 생활을 털어놓을 때 몇몇 친구는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세월은 지나갔지만 그 때 생각이 나서 몇 줄 적어본다.
어느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다 일어나 보니 아내는 와이셔츠를 다리고 있었고 아들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잠시 안절부절 못하다가 가장이랍시고 늦잠을 잘 때 혹여 잠이 깰까 봐 변기의 물도 안 내리고 숨을 죽이고 있는 식구들… 정말 식솔이라고 부를 자격도 없었다. 그 식구들을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나 라는 생각에서다.
어쩌다 만나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잘 살아보자며 아등바등 거리다가 세월의 강물에 청춘의 꽃잎들을 다 흘려 보낸 아내… 돈도 없고 빽 없는 집의 가난한 아들로 태어나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이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볼 때 마다 염치가 없었다.
이민생활 가운데 오래도록 바깥바람 한번 쐬지 못하는 식구들을 위해 덜 깬 잠 그리고 숙취가 가시도록 찬물에 얼굴을 담그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시기 전 검소한 나들이나 하자고 했다.
좁은 길이지만 잘 닦여진 구불구불 구비를 돌아갈 적마다 맑은 산들이 호수에 제 그림자를 담그고 울긋불긋한 단풍잎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쏟아지고 바람도 살랑거렸다. 그러다 시장기가 들기에 도시의 빌딩 숲에서 욕망의 햄버거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한 아름 사들고 다시 맑은 공기 속 공원으로 들어갔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는 이민자들은 가끔 복잡한 차 소리와 인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숲 속으로 들어가 맑은 바람으로 몸과 마음을 씻음이 바람직하다. 세속(世俗)을 벗어난 듯한 공간에서 무언(無言)으로 나의 상한 마음을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씻었다. 갈(渴)한 마음이 시원해졌다. 이곳저곳 처녀애들 종아리처럼 매끈한 나무들이 잎사귀를 흔들며 재살거리고 티 없이 맑고 파란 하늘은 올려다볼수록 눈이 부셨다.
한가로이 떠도는 흰 구름이 내려다보며 희롱하는 듯 했다. 잡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뜬구름 잡을 생각은 없고 그대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정말 사는 게 뭔지 어느 새 희망찬 꿈은 사라지고… 아등바등 거리기도 싫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내 청춘과 희망은 어느새 노랗고 빨간 단풍으로 물 들고 말았으니 우리의 마음에 평화와 행복은 그 언제 돌아올 거냐며 눈물을 흘리며 속 얘기를 하던 그 친구는 지금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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