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 나름의 몇가지 기대를 했었다. ‘역사의 진보라든가 민족자존심의 재정립 같은 기회를 어쩌면 가질 수도 있겠다’ 했지만 역시나 어려웠다. 누가 뭐라든지 역사에 대한 무지와 천박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면 진부해 질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성리학에 바탕을 둔 조선의 선비정신은 17세기 다산시대를 거치면서 현실생활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국운이 쇠해지면서는 독립운동의 거대한 저변을 뒷받침해 주는 커다란 정신이 되었다.
그 정신이 바탕이 되어 하나밖에 없는 자기목숨마저 초개와 같이 민족을 위해 던질 수 있었다. 그 선비정신의 요체는 4덕목이라고 하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어짐(仁)이 나오고, 부끄럽고 미워하는 마음에서 옳음(義)의 극치에 이른다 하였다. 사양하는 마음에서 예절이 생기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에서 지혜가 생긴다고 하였다.
무슨 케케묵은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납득이 쉬우려면 자신의 자식들에게 바라는 바를 그대로 적용시켜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어질고, 의롭고, 예절바르고, 지혜로운 사람, 그들이 이끄는 사회나 국가가 그것이다. 건강한 가정위에서 국가가 융성한다.
당장 눈앞에 밥이 되는 말은 아닐지라도 이게 역사의식이라고 배웠었다. 민족이라는 말도 꺼내기가 사실 창피하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나마도 민족이라는 개념이 보다 선명해지는 느낌이 좀 들 뿐이다.
‘2012년 한국은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으려 한다.’
세계 언론의 공통된 표현이었다. CNN, BBC, 르몽드가 그렇게 발표했다. 타임지는 표지에 그렇게 실었다. 독재자의 대명사는 단연 아돌프 히틀러이다. 역사상 고대나 왕정시대는 독재라고 부르지 않는다.
공화정이 생겨나고부터 공화정을 부정하고 왕정시대로 복귀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우리는 독재자로 부른다. 그래서 독재는 역사의 퇴행이다.
300만명을 죽인 폴포트,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미개한 아프리카에 많다. 그 자랑스런(?) 리스트에 박정희는 이승만을 물리치고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들은 전 국민을 절대 죽이지 않는다.
그들에 순종할 노예가 필요하다. 죽어라고 일하고 받은 빵조각을 감사하게 얻어먹을 우민들이 없어져 버리면 존재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독재와 불의에 저항하는 소수들을 억압하고 죽인다.
정적들을 탄압하고 기회를 박탈하는 일은 서구에도 다반사이지만 그 정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국민들이 어떤 수준이냐에 따라 다르다.
박정희 시대는 ‘10%를 억압했어도 90%를 잘 살게 했다’ 고 인식하거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묻고 싶다. ‘일제 36년 강권 통치당시에 10%의 독립투사들을 억압했어도 나머지를 살려줬으니 일본에 감사해야 하는가?’ 북한주민 10%를 처형했어도 나머지 90%를 살려줬으니 마이크만 들이대면 지상낙원에 살고 있다는 북한주민이 옳다는 것인가?’ 선뜻 대답을 못하는 당신, 무지하거나 천박한 것이다. 세계의 조롱거리에 일조한 것이다.
말이 좋아 보수지 아파트값 하나에 자식 후손들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관심밖이다. 오늘 점심으로 얻어 놓은 밥 한 덩이 누구에게 빼앗길까 걱정하는 수준하고 오십보 백보차이다.
그 유신때 6년 감옥을 살고 나와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신독재 타도 만이 민족의 길이라고 하더니 말년에 와서 독재자의 딸 찬양대열에 합류한 김지하가 공교로운 시기에 무죄선고를 받고 나서 한다는 말이 ‘나에게는 돈이 가장 중요하다. 국가는 나에게 5천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니, ‘슬프다’는 표현이외는 없다.
엊그제 한 조사기관 발표가 있었다. ‘44%의 고등학생이 10억이 생긴다면 1년 감옥살이도 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 의식구조가 이 시대의 한국을 가장 정직하게 반영했다고 본다.
여기에 대한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어떠한 시스템도 현재의 한국에는 없는 것 같다. 체념하고 바라보기에는 역사의 무게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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