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신 목사<에리자베스 한인교회>
요즘 못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신문을 읽으면서 혹시라도 비리, 사기, 치정, 사건, 사고의 기사가 있으면 혹시 또 그 관련자가 목사가 아닐까 하는 염려로 자초지종을 상세히 읽어 보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하루를 빼놓지 않고 일어나는 별의 별 사건들이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특별하다고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네 삶의 모습을 채우고 있는 이 때, 그 사건의 중심에 목회자들이 관계되어 있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만 해도 ‘모녀농락 60대 목사’ ‘목사가 신도 돈 뜯어내’, ‘경찰도 놀란 변태 목사’, ‘인면수심 목사’, ‘세습 목사’, ‘표절 목사’ 최근 몇달 사이에 신문에 올라온 기사들의 제목들이다. 그 덕에 지래 놀라서 이번에도 그런 거야 하면서 기사를 읽곤 한다.
얼마전 한국의 TV 방송에서 대검찰청에서 발표한 통계를 바탕으로 전문직 범죄율의 순위를 매겼는데 1위가 종교인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에는 기독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도 포함되어 있겠지 하며 스스로 변명하다보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타 종교인들까지 포함했기 때문 일거야 하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미 기독교인들이, 특히 목사, 전도사가 사람들의 신뢰를 철저하게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성경이라는 높은 기준을 가르치고 전하는 사람들인데 모르는 사람보다는 낫겠지 하는 사회적인 기대는 이미 그들도 다름이 없구나 하는 실망으로 변하고 말았고 오히려 어디 가서 목사입니다 하고 말하면 얼마 전에 그 목사가 저지른 사건 들으셨어요 하고 되물어 볼까봐 주저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래도 신뢰도가 가장 높았다는 목회자들이 어떻게 해서 범죄율 1위의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일까. 먼저는 솔직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여자 문제로 인해 따르던 많은 청년들에게 큰 실망을 가져다 준 한 목회자는 그 일이 있기 전 한국 교회 청년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의 8~90%가 성적인 유혹을 받고 있다고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이야기하며 열변을 토한 적이 있다.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탓하듯 이야기를 했는데 얼마지 않아서 자신이 그 유혹에 넘어지고 말았다. 남이 어떻다는 말보다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솔직한 고백과 스스로를 지킴이 있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논문을 표절하여서 문제가 된 다른 목회자는 기독교 윤리를 실천하자는 운동에 일원으로서 일을 하다가 비윤리적인 행위로 사임을 했다. 자신이 이미 잘못을 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이 있었다면 감히 윤리를 실천하자며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거다.
나도 죄와 잘못에 자유하지 못한다. 나도 돌아보면 이런 저런 사람들이 알지 말았으면 하면 많은 문제와 부끄러움이 있다. 아니 많다. 어쩌면 더 많다. 누가 자신있게 나는 무죄, 무결하다고 하겠는가. 그러니 나는 괜찮다는 거짓에서 벗어나 솔직해야 하겠다.
또한 돌아서지 못해서 그렇다. 기독교에선 이것을 회개라고 한다. 죄와 잘못을 고백하고 돌이키고 다시는 같은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는 것이 회개이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정욕에 실패한 목회자가 얼마지 않아서 다시 목회를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본다. 비윤리적인 문제도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여론이 줄어들기까지 잠시 기다리면 된다는 식의 해결모습을 볼 때 회개가 아니라 회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회피는 해결책이 결코 아니다. 회개는 고백이 먼저다. 그런 후 변화이다. 우리 목회자가 조금만 더 솔직하면,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잘못한 것 잘못했다고 말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이렇게 실망스러운 지경에 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잘못을 회피하다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모습이 있지 않은지 돌아본다.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문제이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목사들이 문제이다.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보고 살아왔던 나같은 목회자들의 잘못이다.
이런 글을 적는 것도 조심스럽다. 내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적는 게 아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내가 먼저, 나의 잘못과 죄를 고백하여 적어도 하나님과 예수님은 욕을 먹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적는다. 내가 사랑하지 못했다. 내가 이웃을 속였다. 내가 형제를 미워했으며 내가 정욕을 품고 죄를 범했으며 내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욕심으로 내것만을 움켜 잡고 나누지 못했다.
내가 목사이지만 목사답지 못하게 살았다. 내가 그리스도인이지만 예수님의 사람이 되지 못했다. 다 내 잘못이다. 다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이다. 제발 사회가 어쩔 수 없이 연약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나와 같은 목회자들만 향해서 손가락질하고, 죄 없고 흠 없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욕하지 않으면 다른 바램이 없겠다. 나 한 사람이라도 석고대죄 하는 마음으로 죄와 잘못을 고백하여 이렇게 하나님과 여러분들께 사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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