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들이 청교도에게 음식을 나눠줘 함께 먹고 있다. 미국의 추수 감사절 음식의 기원이기도 하다.
서영민 지국장
이번 주 목요일 추수 감사절은 미국판 추석이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한해를 돌아보며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이에 더해 미국 전통은 주위에 갈 곳이 없거나 외로운 사람 혹은 외국 타지에서 온 이웃들을 초청해 함께 식사를 한다.
필자도 25년 전 미국에 온 첫해 커네티컷 스템포드 부촌 미국인 가정에서 추수감사절을 보냈던 경험이 있다. 뉴욕 타임스 주필이었던 주인집에 전 가족이 실로 전 세계에서 추수 감사절을 기념하러 모이는 진풍경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관이다. 아들 가족은 캘리포니아에서 딸 가족은 스위스에서 이 명절을 지내기 위해 모였다. 또 필자를 포함해 6명의 외국인 학생과 뉴욕 시 빈민 가정 출신 두 명의 청소년이 만찬에 초대되었다.
한국, 중국, 인도, 스페인, 아프리카 등 초청된 외국 학생들의 출신국도 다양했다. 하지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격식 없는 미국식 환대였다. 어울려 맥주를 마시는 사람, 와인을 마시는 사람, 정치를 얘기하는 사람, 학문을 얘기하는 사람 누구하나 틀에 고정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만찬 때는 당시 본 것 중 가장 큰 식탁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앉아 함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이때도 역시 이슬람을 믿는다는 아프리카 출신 학생을 고려해 이슬람식 경전 문구를 외우는 관대함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만찬이 끝나자 모두 TV 앞에 모여 앉아 미식축구를 보면서 편을 나눠 다른 팀을 응원하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도대체 상류층 사람들의 삶이어서 위화감을 느낀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수수하고 소박한 첫 미국식 추수 감사절이 깊이 뇌리에 남아있다
그러나 사실 이 추수감사절의 역사를 통해 실제 미국 역사를 들여다보면 현실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1620년 늦여름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우여곡절 끝에 11월 초 보스턴 남단 플리머스에 정박을 하였다. 이들은 당시 영국의 국교인 앵글리칸 교회 원칙에 반대한 복음주의자들이었는데 본국에서 박해를 받자 신천지 미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원래 목적지는 허드슨 강 남단 현 뉴욕시였으나 선원들의 반란, 질병, 이주민들 간의 반목 등으로 플리머스에 닻을 내리게 된 것이다. 당시 매우 추운 날씨에 영국에서 가지고 온 식료품이 바닥이 나고 질병과 싸움으로 선원과 이주민 절반 이상이 죽었다. 해안에 상륙을 했으나 겨울인데다 낯선 환경으로 먹을 것을 구하기커녕 죽음만을 기다리는 처참한 처지에 놓였다.
그때 기적처럼 이 지역 원주민이었던 스퀀토인들이 옥수수, 감자, 스쿼시, 칠면조를 들고 이방인들을 살렸다. 이 부족의 족장 이름이 마싸오잇로 현재 매사추세츠 주의 이름이 여기서 기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원주민들이 청교도에게 나눠준 음식이 미국의 추수 감사절 음식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배불리 먹어 아사를 모면한 청교도들이 원주민들에게 감사는 고사하고 한 달도 안 된 12월 중순에 원주민의 옥수수 창고를 약탈했다.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고 나머지 식량과 원주민 여성과 아이들을 불을 태워 죽였다. 이는 원주민이 소유한 비옥한 땅을 빼앗으려는 악랄한 의도였다.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위해 자신들의 양식을 나눠줬던 미국 원주민들과 자신들이 믿는 종교를 내세워 이들을 도륙한 영국 청교도들의 대조적인 행동 양식이 불행하게도 이토록 아름다운 미국 추수 감사절의 기원이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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