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의 따님 이정화 양이 이화여고를 졸업하기 전 17세의 나이에 쓴 ‘그리운 아버님 춘원’을 다시 읽었다. 이제 80객이 된 이정화 박사는 어떻게 이 책을 회고하실까. 오래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춘원을 다시 보게 되었다. 개화기 한국의 문호, 젊은 날 독립운동에 신명을 다했다 대동아전쟁 발발 전후 친일파로 돌아선 그의 행적을 이 책 한권으로 다 용서할수 있었다. 어린 딸 아이 눈에 비친 아버지,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던 춘원, 일제시대 체포, 구금, 재판, 해방 후 반민특위로 끌려가 고생한 죄수, 마침내 한국전쟁 중에 인민군에 끌려가 언제 어느 하늘 아래서 사망했는지도 모르는 한국 근세사의 거인을 지금도 단죄해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자들, 민족주의란 민족을 꺼안는 사랑이다. 아직도 친일행적 인사를 찾아가 규탄하는 자들이 왕성하다. 한국 안에서 잃은 것을 밖에서 찾자는 것이 해외동포의 과제가 아닐까.
소설가이자 시인, 문학평론가, 번역가로서 한국 근대문학사의 새로운 획을 그은 춘원은 흙, 무정, 유정, 원효대사, 사랑, 춘원시가집 등 수많은 소설 작품과 시집 그리고 수필과 번역서 등을 저술하였다. 그의 문학적 위업은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실감할 수 있었다. 나의 친구들이 춘원의 ‘흙’을 읽고 농과대학으로 진학했고 ‘성웅 이순신’을 읽고 해군사관학교로 진학했다. 그가 남긴 28편의 장편과 더불어 그가 남긴 200여편의 시편들이 아직도 그의 문학적 체취를 느끼게 한다. 조선이 망하던 무렵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일찍 고아가 되어 혼자 고독하게 성장했지만 그는 한 작가로 조국의 독립과 민중의 계몽에 최선을 다했다. 그도 한 인간으로 일제 말엽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보지만 그의 일생은 어느 책이나 저술보다 ‘그리운 아버님 춘원’ 만큼 자세히 기록된 책은 없다.
아이들이 문학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춘원의 부인은 아들과 딸 둘을 키웠다. 아들와 둘째 딸은 물리학과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자, 큰 딸이 문학을 전공했고 아버지의 작품을 영역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운 아버님 춘원’은 둘째 딸이 이화여고 시절 미국의 뉴욕 해럴드 트리뷴 지 초청 세계학생 토론대회에 한국 대표로 뽑히어 1952년 한국전쟁 기간 중에 미국을 방문하고 일간지 청탁으로 미국방문기를 쓰고 나서 한 출판사의 요청으로 아버지의 회상을 적어나간 원고였다. 1952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기 전 4개월에 걸쳐 쓴 회고록. 그 후 그녀는 미국유학으로 한국을 떠났고 이 원고는 어머니의 반대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55년에 처음 간행되었다.
혹 아버지처럼 문학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어머니 허영숙 여사는 따님의 원고를 감추었지만 그녀의 미국유학중에 따님도 모르게 이 원고는 책으로 나온 것이다. 지금도 이정화 박사는 자기는 과학자로 문학을 모른다고 말한다. 아버지 문학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문인회 초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정화 박사에게 “그리운 아버지”를 이야기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다 그분은 문인회 초청을 받아들였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 아직도 아버지가 그리운 딸, 그 딸이 전하는 아버지 춘원은 그가 남긴 “원효대사”와 같은 성자의 길을 추구한 사실을 일게 된다. 아들, 딸에게 거짓말도 죄가 된다고 가르친 춘원. 파란만장의 삶을 이제 노년에 든 따님의 추억으로 워싱턴의 가을밤이 아름답고 쓸쓸할 것 같다. 그러나 다시는 이런 기회가 워싱턴에 오지 않을 것을 감히 장담한다. 21일 저녁 우리들은 우래옥에서 아주 소중한 손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은 지난 역사를 재조명하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고 새로 쓰기도 하면서 늘 발전하며 흐른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한가운데서 중요한 증인으로 살고 있다. 부디 문학에 뜻을 둔 분이나 그렇지 않은 분들이 함께 개화기 한국 근대사의 문호 춘원을 좀 더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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