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어김없이 세월이 참 빨리도 날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수록 세월의 흐름이 가속도를 낸다는 말이 실감난다. 성탄절이 되면 어릴 때 공연이 가슴 벅찼던 기분이 아직도 그 잔재를 드러내는데 이번 성탄절은 조금 특이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지구 온난화와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이렇게 온화하고 비가 많이 내린 성탄절은 처음이다. 항상 성탄절은 강추위와 같이 연상되곤 했는데, 여러 세대 지나면 “White Christmas” 의 의미를 모르는 세대도 올 성 싶다. 기후와는 반대로 지구의 현실의 모습은 너무나 추운 것 같다.
지구촌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테러로 인한 죽음, 파괴, 공포, 또한 미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찰과 흑인들의 충돌, 그리고 초췌하고 허탈한 모습의 난민들의 끝없는 행렬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며칠 전 워싱턴 포스트에서 시리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읽었다. 지금은 레바논으로 피난 가서 난민의 신분으로 살고 있는데, 성탄절에 본국에서 가족과 즐겼던 음식과 즐거웠던 때를 회상하며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고 슬퍼한다. 이러한 지구촌의 슬픈 양상은 우리에게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병사가 느끼는 소위 “생존자의 죄책감”같은 감정을 갖게 한다.
사실 미국에 사는 대부분의 한인들은 너무 많이 가지고 누리며, 약자와 나누기에는 인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성탄절 즈음에 출석교회에서 섬기는 P 선교사님이 어려움을 당해 경제적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큰아들에게 아빠, 엄마는 필요한 것이 없으니, 성탄 선물대신 P 선교사님을 도와드리면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고맙게도 흔쾌히 승낙하고 헌금을 보내왔다. 이러한 것이 진정 성탄의 의미가 담긴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성탄절에는 누님의 아들 집에 모여 저녁을 나누었는데, 누님이 사시는 콘도에 흔자 사시는 연로한 은퇴 목사님을 모시고 와서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88세의 연세에 신체도, 기억력도 놀랍게 좋으신데, 다만 귀가 많이 약해지셔서 대화가 조금 힘들었다.
미국에서 공부하시고, 이 지역에서 27년간 목회하셨다는 목사님은 기억력을 더듬으시며 예전에 물로만 며칠 배를 채우셨던 고난의 시절, 한국 교단에서의 경험과 이곳 미국에서의 목회 이야기 등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배고픈 자의 설움을 잘 아시는 듯, 북한 동포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나중에 생각하니 이 목사님께 좋은 성탄 선물을 드린 기분이다. 외롭게 혼자 사시는 분, 대화할 상대가 없는 분에게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 오래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리를 떠나면서 “나혼자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하다”고 예의를 갖추시는 것을 보니 참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도록 애쓰며 살아오신 분이란 생각이 들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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