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으로 인해 1954년 10월30일 이북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기 이전의 개성은 수세기에 걸쳐 우리나라 정치,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했던 곳이다. 현재는 개성 시내와 군사분계선 사이에 개성공단이 있으며, 개성공단은 한국의 파주시 문산읍에서 불과 14km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 지리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개성은 고려왕조 500년의 수도로서의 기능과 조선시대에는 인삼을 대량 증폭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홍삼의 대량생산 시대를 만들었던 개성상인 또는 송상들의 본거지인 상인 도시였다. 개성상인은 각지에 송방(松房)이라는 지점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상호간에 단결하여 외래 상인들을 배척하는 등의 영리한 상업 활동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Kaesong Industrial Region(KIR)’ 즉 개성공단 사업은 2000년 8월22일 현대아산(주)과 이북과의 합의로 시작되어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한국은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그해 5월24일 대북 조치를 발표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투자를 금지하고 공단 체류 인원을 평소의 50~60 % 수준으로 축소했다. 북한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공단폐쇄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비난했다. 또한 2010년 11월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하여 개성공단으로 출정을 잠정 차단하고, 한국으로 귀환만 허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가 그해 11월 29일부터 최소한의 출정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어 2013년 4월3일, 북한은 개성공단으로의 출경을 금지하고 한국으로의 귀환만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고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내 국민보호를 위해 그달 26일, 개성공단 내 잔류근로자 전원철수 조치를 단행했다.
올해 2월10일,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남측 근로자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북한도 다음 날인 11일, 개성공단 폐쇄 및 개성공단 내 자산 동결, 남측 인원 추방 등을 남측에 통보했다.
개성은 그 의미대로 열려있는 도시였고 열려 있던 곳이다. 이번 대한민국 행정부의 조치는 마치 자식간의 싸움으로 집안을 풍비박산 내는 꼴이며 이북의 대응 또한 국제사회에 다시한번 손가락질 당하는 처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개성공단을 만들 당시 독일은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고 통일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찬사를 보내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한국 총선용이라는 말로 조롱하고 있고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에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지금도 늦지 않다. 한국정부는 북한 정권과 다시 대화하라. 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와 통일을 향한 갈등을 먼저 해소 하라.
개성공단을 통한 대한민국과 이북의 순조로운 발전과 나아가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한민족 국민의 염려와 기원이 이 순간 송두리째 날아간다면 그 찢기는 가슴으로 또 다시 눈물로 성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오라. 그리고 응답하라. 개성상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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