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큰 딸이 황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은혜 아빠가 쓰러져 병원에 가는 길이에요’
‘어느 병원이냐?’ ‘병원 가까이에 있는 유니언 메모리얼이에요’
급하게 응급실로 달려갔다. 도착하니 손자와 딸의 오열속에 이미 숨이 멎은채 누워 있다. 이럴수가… 기가막히고 억장이 무너진다.
치과 의사이던 사위는 딸과 함께 점심를 먹고 돌아와 기다리고 있던 환자를 치료하여 돌려보내고 쓰러졌다는 것이다.
지난 일이 파노라마 되어 지나간다. 가난한 이민교회 목사의 아들로 자라며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치과대학을 지망했다고 나에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하고 있을 때 힘겹게 목회하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어머니가 봉제공장에 다니며 뒷바라지를 하였다. 이웃 캠퍼스에 있는 약대를 다니던 큰 딸을 만나 교제하던 어느 봄날 우리 집을 찾아왔다. 외아들인 자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다면서 울먹이며 결혼 승락을 간청하던 효자였다. 휠체어에 몸을 싣고 결혼식장에 참석하여 흐느끼며 기뻐하던 아버지는 며느리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행복하게 지내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버지를 여의고 치과의사가 된 사위는 그동안 고생해온 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모시어 왔다. 그러다 12년전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장례식장에서 우리에게 ‘이제 저에게는 장인, 장모님 밖에 않계세요. 아버님 어머님처럼 모실께요’ 하던 큰 사위였다. 은퇴하고 워싱턴으로 돌아왔을 때 살던 집을 선뜻 내어주며 반겨하였고. 결혼 20주년을 기념하여서는 ‘큰 따님 희아를 잘 길러서 부족한 이 사람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자동차를 선물하였고 철이 바뀌면 옷을 사주던 큰 사위였다.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가 성지순례를 그렇게 다녀오고 싶어 하셨는데 돈이 없어 보내드리지 못한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었다고 하면서 말없이 어려운 목회자를 돕던 사위였다. 지난 토요일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오늘 장모님이 해주신 닭곰탕이 왜 이렇게 맛이 있어요’ 하면서 내일 아침에 먹게 남은 것을 싸달라고 하며 가지고간 이서방! 그 날이 자네와 우리의 마지막 이별이 될 줄 꿈엔들 알았겠나... 가슴이 먹먹해지네, 이렇게 일찍 떠날려고 그토록 치열하게 살며 그처럼 농도 짙은 사랑을 주었던가... 아-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이기에 탄식하고 신음하며 주님의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어, 그러나 자네와 나는 굳게 믿어온 믿음이 있기에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있어. 우리 영생을 믿었잖아, 부활도 믿어 ‘이 세상 지나가고 저 천국 가까와 나 오래 기다리던 그 영광 보인다. 이 어두운 밤이 가고 새날이 밝으니 저 하늘나라 영광 참 밝게 빛난다’ 이서방! 이제 자네를 보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네, 이서방! 희아는 우리 내외와 형제들이 잘 돌보겠네. 그레이스와 죠셉도 다 컸으니 엄마의 든든한 울타리가 될 거야. 염려하지 말고 예전처럼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게. 바라기는 이제 먼저 하늘나라에 가계신 어머니 아버지 반가이 만나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천국에서 평안히 안식하길 바래. 이 서방! 그동안 고마웠어. 사랑해 사랑해.
<박석규 은퇴 목사 실버스프링,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