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끝’이라는 것이 너무 싫었다. 더이상의 변화도, 기회도, 노력할 시간조차도 가질 수 없는 막다른 골목. 마지막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라도 더이상의 재생이 불가능한, 멈춰버려 곧 바래질 영화 같은 느낌. 떠올리기만 해도 무기력해지고 돌이키고 싶고, 얼만큼의 노력을 기울인 일이든 언제나 그 끝에선 찝찝한 미련이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다.
항상 돌이켜보면 그 모든 상황과 기회를 당연시한 것도 아니었고, 그 당시 기울일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들인 후였음에도, 왜 그리 끝이라는 것은 나를 아쉽게 하고 불완전하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과 허탈함을 수없이 느낀 후에야 어떠한 ‘끝’을 맺고 나면 언제나 ‘그 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 관계가, 한순간이, 한 나이대가 끝을 맺어도,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고, 다음 관계와 다음 순간과 다음 나이를 맡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이지만 전의 것을 놓아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움이었다.
나는 항상 끝이 난 후의 껍데기를 붙잡고 텅 비어버린 그 속을 헤집으며 내 과거에 얽매여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 껍데기를 채우던 다른 것들은 모두 저만치 성장한 다른 모습으로 나를 앞서 지나치고 있는데, 나 혼자 그 모습 그대로 흑백 사진이 되어가고 있더라. 어색하더라도 그 장면에서 한 발짝씩 걸어 나와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고,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고, 새로운 경험 속에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다시금 알록달록한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있는 것이었다.
내가 매일 지나간 어제를 붙들고 그 하루를 충분히 열심히 살았는가 자책하는 동안, 시간은 무색하게 흐르고, 어느새 한 해가 흘러 새해를 맞이하며, 새 나이 26을 맞았다. 매주 글을 쓰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내 경험을 돌이켜보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사색하는 이 시간도 이제 ‘끝’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후’를 살아갈 것이고 새로운 책임과 경험이 따라올 것이기에 이번엔 아쉬움도 미련도 남기지 않겠다. 매주 기록한 글마다 그 순간의 내가 남겨져 있을 것이기에 이번의 ‘끝’은 소중한 추억이 되길 바라며 담담히 받아들이겠다. 이번의 ‘끝’을 잇는 앞으로의 많은 ‘끝’과 언제나 뒤따를 ‘그 후’를 기대하며.
<김희연 (SF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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