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렉시트로 쪼개진 유니이티드 킹덤
▶ 세대·인종별로 갈리기보단 경제적 관점 따라 엇갈려…이민자·일자리가 가장 초점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도 “왜 따라야 하나” 반발

지난달 31일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브렉시트’라고 쓰인 영국 국기를 들고 브렉시트 발효를 기뻐하고 있다. [AP]

지난달 31일 에딘버러의 스코틀랜드 의사당 앞에서 초등학생 자매가 ‘브렉시트가 우리의 자유를 앗아갔다’는 피켓을 들고 브렉시트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킹스칼리지 산하 리서치 센터인 ‘변화하는 유럽 속 영국’의 질 루터 시니어 연구원.
“내 일자리를 뺏어 가는 브렉시트 반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지을 총선이 열리기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 10일. 영국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 10번가 인접 도로에서 시민들 간 때아닌 말싸움이 벌어졌다. 무역업에 종사하는 스코틀랜드 출신 알렉스가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자, 지나가던 영국시민 한 무리가 “스코틀랜드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면서 분위기가 한순간 험악해 진 것. 해질 무렵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간 알렉스는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EU 제품에 높은 관세가 붙어 EU 제품을 수입해 민간에 공급하는 나 같은 무역상은 큰 손해를 입게 된다”며 “유나이티드 킹덤(UK) 중 잉글랜드만 찬성하는 브렉시트를 스코틀랜드 주민들이 왜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런던 시민이라고 브렉시트를 무조건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총선 당일 만난 아프리카 이민자 2세인 마리아는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보수당은 늘 백인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며 “EU와 인적, 물적 교류를 막는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노동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유럽 출신 이민자인 레드슬라브는 “공짜 의료 진료를 받으려는 이민자들 때문에 병원에 가면 2시간 이상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됐다”며 “영국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이민자 유입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브렉시트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찬반은 세대, 인종별 특성에 따라 갈리지 않고, 경제적 관점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있었다. 영국이 EU 경제체제 내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사람은 주로 브렉시트를 반대했지만, EU 경제체제하에서 영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람은 브렉시트 찬성파가 다수를 이뤘다. 특히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시민들은 여러 경제 문제 중 이민자와 일자리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런던 외곽의 한 호텔에서 청소일을 하는 마리안도 일자리 문제로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올해 초까지 시내 레스토랑에서 홀 담당 정직원으로 근무했었는데, 사장이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직원들을 비정규직 이민자로 바꾸면서 일자리를 잃었다”며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영국 국민들의 일자리가 늘어나 경제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리안의 생각과 달리 이민자는 영국 경제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비싼 인건비로 생산 단가가 상승하면서 영국 경제 전반이 경쟁력을 잃어 갔는데, 저임금 이민자 고용이 최근 늘면서 영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았다는 것이다.
킹스칼리지 산하 리서치 센터인 ‘변화하는 유럽 속 영국’(UK in a changing Europe)의 질 루터 선임연구원은 “영국이 EU에 가입한 후 이민자 수가 급격히 늘었지만, 이는 영국 경제에 오히려 도움이 됐다”며 “다만 이민자 수 증가로 의료 등 공공서비스 질이 떨어지면서 이민자에 대한 영국 시민들의 반감이 증가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 전체에서 브렉시트로 가장 큰 경제적 타격을 받는 곳도 영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EU에 대한 영국의 수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영국의 전체 수출품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하지만 EU는 그 비중이 16%에 불과하다.
‘변화하는 유럽 속 영국’은 ‘브렉시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영국과 EU 간에 별다른 합의 없이 브렉시트가 일어나고, 단단한 무역 장벽이 생기면 영국은 1인당 소득이 연간 2.5% 감소한다”며 “그러나 영국과 무역 관계가 큰 아일랜드를 제외하고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 국가의 소득은 0.5% 이하 감소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브렉시트는 영국 연합왕국 구성원들의 분열도 야기하고 있다. EU와 단일 경제체제하에서 무역과 관광 등에서 큰 이점을 누려 온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잉글랜드가 주도하는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하원 과반(326석) 의석을 넘어서는 365석을 차지하면서 브렉시트가 최종 결정됐지만,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잉글랜드 대비 인구수가 적어 총선 투표에서는 졌지만 스코틀랜드 자체 투표결과만 놓고 보면 브렉시트 반대 의견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에서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시행을 공약으로 내건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59개 선거구 중 48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지난달 31일 영국이 EU에서 공식 탈퇴했지만,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재추진하고 있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최근 성명을 내고 “이제 EU의 일원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강조했다.
역시 연합왕국 일원인 북아일랜드 민심도 변화하고 있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사실상 단일 경제권을 유지하고 있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국경이 생긴다면, 주민들 경제 생활에 큰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잠잠했던 북아일랜드 분리주의자들도 활동을 재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루터 선임연구원은 “결국 이혼(브렉시트)하기로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협상을 통해 어떻게 그 피해를 최소화하느냐”라며 “그동안 한 지붕 안에 살았던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를 설득해야 하는 것도 보리스 존슨 총리의 최대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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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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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돈 권력있는 자들 농간에 서민 들만 손해보는 제도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앞으로 다가올 앞날 어떻게 대비할지 모르겠군요. 인건비 물건값이 올라 서민들이 살기 어려우면 그들은 거리로 나 앉거나 그리고 도둑질 깡패질 살인....결국엔 너도 나도 모두가 얻는것보다 잃는게 많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