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중의 하나인 모노 레이크(Mono Lake)에 왔다. 캘리포니아의 동쪽 끝, 아리드 그레이트 베이슨(the arid great basin) 과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사이에 있다. 5백만 년 전에 화산으로 만들어진 호수다. 다른 어느 호수에서는 볼 수 없는 기묘한 투파를 보러 남쪽으로 약 반시간 운전하여 모노 레이크 투파 국립보호지역에 “우와!”감탄사와 함께 발을 디뎠다.
잔잔한 호수위에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투파들이 햇빛에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반짝인다. 호수물이 빠진 모래땅에도 노란 꽃을 피운 잡풀 사이에 몇 층 탑(tower) 높이의 아름다운 투파 건축물(?)이 서 있다. 흰색, 회색, 검정색으로 신비하게 조화를 이룬 수많은 투파 사이로 노랑 나비가 즐겁게 나들이 다닌다. 하얀 콜리풀라워 모양의 돌은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과 석회 침전물로 만들어졌다. 칼슘을 다량으로 포함한 맑은 샘물이 탄소화 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연적인 현상이다.
근 천년 동안 시에라 산맥의 눈 녹은 물이 호수로 흘러 들어온 광천수는 출구가 없어 고인물이 계속 증발하고 있다. 손 씻기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맑은 호수물이 비눗물처럼 미끄럽다.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맛을 보니 우리집 앞 바닷물보다 몇배나 짜다. 이스라엘 사해의 물보다 더 짠 것 같다. 호수에 들어가 누워 보지는 않았는데 강한 부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알칼리성 염분이 가득한 이 호수에는 물고기는 살 수 없고 짠 새우와 아주 작은 검정파리가 주위에 새까맣게 날아다닌다. 파리를 인디언은‘모노(mono)’라고 하는데 파리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수백만의 참새와 물새들이 새우와 파리를 먹으며 투파 구멍에 집을 짓고 산다. 석회질의 뾰족한 작은 돌을 만져보니 떡가루처럼 쉽게 떨어지는 곳도 있다. 맑게 비치는 호수 바닥에는 지금도 크고 작은 투파들이 하얗게 자라고 있다.
대부분의 호수는 산 계곡에서 흘러온 물을 모아 바다로 흘러 보낸다. 이렇게 쉬지 않고 물을 흘러 보내고, 새로운 물을 받아들여야 물고기가 살수 있다. 받아 모으기만 하고 비우지 않으면, 물은 점점 줄어들고 살아있는 물고기 대신 엉뚱한? 파리 떼들이 꼬이고 파리를 잠아 먹으러 모이는 새들이 모인다. 비워지는 자리에 온전하고 건전한 것이 채워지도록 적당히 비우고 채우는 지혜를 자연에서 배운다.
또한 무엇인가 채우려면 준비된 빈공간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삶에도 비워서 채울 준비가 된 그릇만큼 채워지는 원리를 경험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손에 가득 쥐고 만 있으면 손가락사이로 물이 새어 나가듯 사라지기 쉽다. 비우지 않는 곳에는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없어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귀한 생명을 키울 수 없다.
이 호수는 출구가 없어서 물을 흘러 보내지는 못하지만 모아진 물이 증발하여 무언가 채워질 여백을 만들었다. 물이 점점 줄어드는 모노 레이크에 이런 아름다운 투파가 없었더라면 이곳은 얼마나 황량했을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짠 새우와 파리가 없었더라면 새들도 짠물만 있는 호수로 와서 살지 않을 것이다. 비어지는 공간에 세워진 멋진 투파는 새들의 맨션 같은 안식처가 되어 주고, 다른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게 한다. 채워지는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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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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