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물들을 모으고, 아끼고, 나눈다는 이건희 특별전을 따스한 겨울에 다녀왔다. 이번 이건희 컬렉션은 특별전이라 국립박물관 본관이 아니라 넓고 넓은 내셔널 몰 잔디밭 건너편의 국립아시아미술관 스미소니언재단에 있는 프리어 갤러리와 아서 M.새클러 갤러리 중에서 새클러 갤러리에 있다. 이 작은 건물은 특이하게 전시실 대부분이 지하에 있어선지 그 옛날로 돌아가는 듯하다.
한국 최고의 부자인 이건희는 평생 모은 문화유산을 몽땅 국가에 기증하여 부족했던 유물을 보충하여 우리 문화의 품격과 관심을 높여 주었다.
조금만 여유가 생겨도 우쭐거리고 시건방을 떠는 나는 하늘이 내린 큰 부자의 씀씀이를 존경한다. 지난번 스페인 여행 때 삼성의 후원으로 복원된 성당을 마주하여 흐뭇했던 기억도 떠올리며 한국을 사랑한다면 누구라도 돈을 많이 벌어서 한국 유물을 많이 사들이기를 바란다.
박물관에 진심인 영국에 사는 친구는 지난번 ‘파리 1874년 인상주의의 순간’ 특별전시회를 무료로 몇 번씩 봤다니 자기는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까지 비싸게 다녔다며 부러워 침 흘린다. 이 전시회도 2월부터는 시카고로 갔다가 그 다음에야 영국으로 간다.
첫 번째로 마주한 사랑방에서는 벼루, 책꽂이, 작고 낮은 책상, 문방사우가 선비의 공부방을 느낄 수 있다.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쓴 월인석보, 뽀얀 달 항아리, 청동으로 만든 북과 종은 파랗게 빛난다.
임금님 뒤에 놓인 병풍그림인 일월오악도의 해와 달은 케이팝 그룹이 열광하게 만들었고 기념품은 완판이다. 절에서 불교의식에 쓰였던, 나무사자상으로 받침대를 만들고 북을 올렸던 법고대가 가장 내 마음에 들었다. 금가루와 아교로 비단에 그린 금동보살삼존입상 부처님도 웅장하게 중생을 내려다보신다.
김홍도의 ‘추성부도’에선 메마르고 쓸쓸한 가을소리가 느껴지며 때로는 서민들의 활기 찬 모습이 담겨있다. 신윤복은 기생의 출행도처럼 양반들의 유흥과 애정으로 야릇한 춘화의 즐거움을 주면서 섬세하고 화려하다.
한국 근현대 그림으론 김환기의 산울림,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등이 있었다.
그동안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유물도 빈약하고 전시관도 변변치 못해서 마음이 시렸는데,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먹거리, 음악, 패션, 화장품이 휩쓸더니 지난번 경주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작지만 심지 굳고 품격 있는 문화대국이 된 것 같다. 외국인 관람객이 바글거리는걸 보니 흐뭇하고 이 기세로 특별전이 대박나길 바란다.
워싱턴 지역에 살고 있다면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 왜냐하면 대부분 그 나라의 수도는 지리적으로도 통치하기 좋고 자연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문화와 예술의 접근성이 좋고 모든 국립박물관과 스미소니언 재단 박물관은 언제든지 무료다.
수많은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 내셔널 몰의 잔디공원을 산책하고 생각에 빠져 낮잠을 즐겨도 된다. 세계 제일의 정치수도답게 국제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를 지녔지만 권모술수와 약육강식의 전쟁터이기도 하다. 연필 뾰족탑과 국회 의사당을 빼곤 고층 건물이 없어선지 탁 트인 하늘도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맛있는 요리와 달콤하고 화려한 디저트와 커피는 지갑을 텅 비게 만든다.
젊은 날 한때는 전 세계 국립박물관 깨기가 버킷리스트였는데 풀 꺾인 할머니는 생각을 바꿨다. 왜냐하면 세상은 넓고 내 인생은 정해졌으니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것만 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음악, 미술, 체육과 문화생활은 나 대신 다른 이가 잘해놓은 걸 즐긴다. 수많은 박물관이 무료라는데도 물론 처음에는 한 달에 한 군데씩 가겠다고 했지만 핑계와 게으름뿐이고, 그나마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 그림만 보고 나올 때마다 그래도 언젠가는 국립미술관 전체를 봐야한다는 의무감과 죄책감을 갖고 있다.
아직은 세계 최강의 미국에서, 워싱토니안이라면, 어디든지 접근성이 좋으니, 모름지기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워싱턴을 휘저으면서, 가까운 주차장을 찾아 헤매는 할머니가 되고 후회하지말기를 바란다. 오만에 강가를 산책을 하는 내 곁으로 반바지에 반팔의 젊은이랑 노인들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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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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