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 김<회사원>
학창시절 미술 선생님께서는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라고 다른 반 학생들의 작품이나 작년 선배들의 작품 중 잘된 것을 보여 주시곤 하셨다. 그런데 내게는 때때로 도움이 되기보단 아니 봄만 못했는데,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일종의 한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보여준 작품의 구도나 색감, 아이디어 등을 어느새 흉내내고 있었다. 며칠 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학창시절 쓴 글이 소년 잡지에 실리고 칭찬을 받자 더더욱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자꾸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었더니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표절처럼 글이 써져서 그만 두었다고 하셨다.
의도적으로 하는 표절은 비난받아야 하지만 요즘처럼 각종 문화 상품이 범람하는 시대에는 사실 자기도 모르게 표절을 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표절을 하나의 문화 장르로 인정하는 것 같다. 원래는 전문적인 문학 비평용어인 ‘패러디’가 이제는 코메디에서 ‘기존의 유명하고 낯익은 작품을 우습게 비틀어 흉내내는 방법’을 뜻하는 말로 자리잡았다. ‘오마쥬’나 ‘데자뷰’라는 일종의 영화적 기법도 사실은 기존의 작품을 창조적으로 모방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원본 그대로 복사하다시피 하는 표절, 원전을 밝히지 않은 표절은 허락되지 않는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와 음악과 그림 그리고 문학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지는 지금, 어찌보면 표절은 어쩔 수 없는 창작의 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술을 배우는 초기에는 남의 작품을 베껴 그리며 배우고, 글을 쓸 때도 명작을 필사하며 작가가 그 작품을 창작했을 때를 되새겨 보기도 한다. 현대의 모든 사상과 예술 작품도 크게 보면 고대의 예술과 사상에 대한 숭배 또는 반감에서부터 나온다고도 하니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라는 명제가 맞는 것도 같다.
김치를 하려고 버무려 놓으면 항아리에 담을 때는 각각의 첨가물의 맛이 모두 난다. 배추 풋내, 젓갈 비린내, 고추 매운내 등등, 하지만 김치가 잘 익어서 푸욱 곰삭게 되면 각각의 재료 맛이 나지 않고 김치 특유의 맛이 난다. 표절의 원본이 김치의 재료라면 새로 창작된 작품은 곰삭은 김치가 아닐까? 재료를 어떻게 배합하고 익히느냐에 따라 김치맛이 달라지듯 작가의 창의성은 원본의 변용 과정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곰삭은 예술의 맛은 그 작가가 만든 것이다.
예술 뿐일까? 남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따라 해도 무분별한 카피는 결국 어색한 날 것 의 냄새만 날 뿐이다. 매스컴에서는 각종 인테리어, 의상 코디법, 라이프 스타일 까지 제공하고 있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응용해야 할 원본이지 사진처럼 똑같이 베껴내는 복사기의 카피 원본이 아니다. 각각의 안목과 가치에 따라 곰삭혔을 때, 하늘 아래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인생- 빛나는 창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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