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적막한 어둠 속에서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유난히 규칙적으로 크게 들리는 때면 시간의 중압감을 느낀다. 인생은 십이시를 순환하는 시간의 쳇바퀴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재의 순간을 운명적으로 살아간다.
그 시간의 쳇바퀴 안에는 나와 너가 실존하고 있고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사는 인생의 애환을 연출한다. 인생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끝없이 밀려오는 현재를 밟는 것이고 시간의 쳇바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무한한 시간의 궤도로 굴러간다. 시간의 중력은 현재에 있고 인생은 현재에 몰입하면서 시간 속으로 함몰되어 가는 것이다.
나는 이미 시간의 쳇바퀴에서 하차하여 세월의 길목에 서있다. 사람의 팔자는 시간을 길들이기에 달려있다고 할까. 돈벌이를 그만두고 시간의 굴레를 벗고 나니 마음이 이처럼 평안할수가 없다.
먹고싶을때 먹고 자고싶을때 자고 자식들은 안정된 직업을 갖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니 마음에 번뇌가 없다. 그위에 손자손녀들이 부리는 재롱을 노처와 함께 즐기고 있으니 세월이 지겹지가 않아 더욱 좋다.
인생의 성패는 과거의 화려했던 흔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서 본다. 얼굴이 그늘져 있으면 자식 때문에 고민이 있고 구겨져 있으면 쓸쓸해 보이면 짝을 잃은 것이고 추하게 보이면 아직도 돈과 명예에 집착하고 있어 시간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증좌이다.
그러나 이 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도록 가슴밑바닥에서 느껴지는 고독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발견한 나의 정체의 절대성 때문일까. 사는 것도 늙는 것도 병든 것도 죽는 것도 결코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고독한 실존이 가슴바닥을 슬프게 적신다. 그래도 그동안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것은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 때문이었으리라.
오래 산다는 것은 고역이고 오래 살려고 하는것은 과욕이다. 내가 두려워 하는것은 오랜 병과 긴 고통의 시간인 것이다.
문득 서옹스님의 죽음이 부러워 진다. “이제 가야겠다”고 한 말씀 하시고 영혼이 육신의 옷을 벗어두고 이승에서 저승을 마을가듯 좌탈입망하신 고승의 법력이 경이롭고 아름답기만 하다.
나도 어느날 밤 저녁 잘먹고 TV를 보다가 이웃가듯 저승을 가는 엉뚱한 상상에 잠겨본다. 그래, 임종게라도 몇마디 남긴다면 무어라고 할까. 마음속에 써보고 또 고쳐 써본다.
“올때는 부모님의 마중받고 갈때는 자식들의 흐느낌소리 듣는다/ 그대만나 짝을 짓고 길벗되니 외롭지가 않았다/ 이승에서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지 못함이다./ 저승길 나홀로 가니 누가 나를 마중할고/ 그대들과 다시 만날지는 그곳의 법도를 몰라 기약할수 없구나/ 그대들과 즐겁게 머물다 가니 고맙다는 말만은 하고 싶다”
어느덧 초침의 작동소리는 들리지 않고 곁에서 잠자는 아내의 고른 숨소리만 들린다. 손을 뻗혀 더듬어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아본다.
남진식/사이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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