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비밀해제 문서 ‘한국서 핵무기 철수에 대한 의미’
미국은 지난 1992년 한국에서 핵무기를 철수했다는 발표보다 15년 전인 1977년에 만일 미국이 한국에서 핵무기를 철수하면 북한의 남침 오판 보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재개를 비롯한 한국의 자주국방 노력이 한층 강화 될 것을 더 우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 중앙정보부(CIA)가 최근 비밀해제, 뉴욕한국일보가 입수한 ‘한국에서의 핵무기 철수에 대한 의미’라는 제목의 비망록에서 CIA는 미국이 한국에서 핵무기를 철수할 경우 북한이 남북전쟁 재발시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보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재개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 더욱 분명할 것이라며 그에 따른 박 대통령의 대응 조치를 경고했다.
비망록은 서울(한국)의 핵무기 (개발) 선택의 주요소는 지속적인 미국과의 포괄적인 관계에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미국의 모든 핵무기 철수는 박(대통령)이 1970년 초부터 추진해온 ‘자주 국방’을 향한 그의 결의를 더욱 강화 할 것이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CIA는 1974년 9월6일자 ‘위클리 리뷰’의 동아시아 퍼시픽 섹션 ‘한국의 첨단 무기’ 보고서에서 ‘박 대통령은 비공식적으로 그가 한국 과학자들에게 1977년 이내에 ‘원자 폭탄’, 로켓과 그 외의 현대 무기를 개발토록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고 한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을 감지, 보고했다. 이후 1975년 1월9일자 ‘한국 경제와 핵 능력’ 비망록에서는 한국이 불과 2억 달러를 들여 매해 1개 또는 2개의 핵무기를 생산하는 프로그램을 시작 할 수는 있고 기술상 1985년 중반 이후에나 실제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CIA는 그러나 1976년 5월27일자 ‘국가 정보 일지 케이블’ 보고서에서 가장 최근 예상에 따르면 한국은 해외에서 채용한 엔지니어들과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자체적인 (핵) 처리 시설을 3년에서 5년 이내에 건설 할 수 있고 핵 안전 협약을 무시할 경우 그 후 1년 만에 핵무기를 생산 할 수 있다고 전망해 실제로 한국이 빠르면 1980년도에 핵보유국이 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피격, 사망함으로서 한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불투명해졌으나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82년 연구용 원자로에서 플루토늄 6g을 추출하고, 2000년 레이저분리장치로 0.2g의 우라늄을 분리했다가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 연구를 중단키로 한 바 있다. <신용일 기자> 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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