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없으면 큰일이지만 달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듯싶다. 달보다 밝은 전등이 불야성을 이룰 뿐 아니라 인공 달(위성)을 자유자재로 띄우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달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밀접하다. 칼렌다는 ‘달’력이고 1년엔 12 ‘달’이 있다. 주중 첫째 요일은 ‘달(月)’요일이다. 농사도 아직 상당부분 달의 주기를 근거로 짓는다. 항해와 고기잡이에 막중한 영향을 미치는 밀물썰물도 달의 인력 탓이다.
특히, 정감을 지배하는 밤의 속성 때문인지 달이 가무음곡에 끼친 공로는 지대하다. 지구의 외아들로 태양계에 속한 9개 행성의 61개 위성 중 하나일 뿐인 달은 그 위세가 할아버지인 해와 비교가 안 되지만 인류문명의 개벽 이래 해에 못지않게 예찬의 대상이 돼왔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달, 달, 무슨 달, 쟁반 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로 시작해서 “낮에 나온 반달은…” “애들아 나오라, 달 따러 가자…”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등의 동요를 부르며 달과 친숙해졌다.
그 뒤 머리가 커지면서 달을 주제로 한 아름다운 시를 수많이 접했다. “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박목월의 ‘달’)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이처럼 사무치게 그리울 줄을…”(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이순신),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데…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이조년) 등이 그 예이다. 달을 노래한 가요와 팝송과 클래식도 헤아릴 수없이 많다. 현인의 ‘신라의 달밤’과 헨리 맨시니의 ‘달 강(Moon River)’이 그렇고 ‘등불을 끄고 자려하니 휘영청 창문이 밝으오…“라는 가곡 ‘달밤’(김태호시, 나운영 작곡)이 그렇다. 베토벤의 ‘월광(Moonlight)’ 소나타와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도 달밤의 정경을 빼어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들 시와 노래는 초승달이나 그믐달이 아닌 보름달을 예찬한다. 보름달은 1년에 12번 뜨지만 그중 정월(음력1월) 대보름달과 8월 대보름달이 가장 밝다. 특히 엄동설한의 정월보다 오곡백과 무르익는 8월 대보름은 자연히 민족 최대의 고유명절인 추석으로 승화됐다.
달이 왜 한국인들에게 절대절명의 영향력을 끼치는지는 바로 그 추석명절이 증명한다. 해마다 수천만 명이 고향을 찾아 민족대이동을 이루는 통에 고속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한다. 필자가 이민 오기전엔 구두표나 ‘미원세트’가 최고의 추석 선물이었지만 요즘은 수백만원짜리 수입 포도주나 송이세트가 인기이고 귀성용 새 차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자동차 판매업소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단다. 한국정부는 추석날은 물론 그 전날과 다음날까지 3일을 공휴일로 제정했다. 그래서 올해는 어제(21일)부터 26일까지 6일을 연달아 노는 사람이 많다.
산이 없는 농촌에서 자란 필자는 ‘달, 달, 무슨 달…’을 배울 때 남산이 무슨 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노래를 부르면 작은 소나무가 듬성듬성 난 동네 뒷동산위로 돋는 보름달이 연상된다. 필자는 실제로 남산 위에 뜬 보름달을 20대 중반 군복무 시절 남산자락에 있는 부대에서 야간보초를 서며 목격했다. 하지만 어릴 때의 정감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시애틀 지역의 한인자녀들은 운이 좋다. 남산보다 더 좋은 ‘눈산 위에 뜬 달’을 보며 자라기 때문이다. 어려서 보름달을 자주 대하면 자연히 정서가 함양되고 가슴에 시상이 깃들기 마련이다. 밤마다 방안에서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는 아이들과는 다르다.
부모들도 운이 좋다. 미국 내 딴 곳엔 없는 대규모 한가위 잔치가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두해와 달리 올해엔 추석에 맞춰 22~23일 페더럴웨이에서 열리는 한우리 축제야말로 서북미 한인들에게만 내려진 축복이다. 자녀들에게 멋진 추억거리와 함께 시심을 심어줄 절호의 기회이다. 이번 주말엔 만사 제쳐두고 자녀들을 데리고 한우리 축제에 참여하자.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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