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소멸해 가고 있는 군주국가의 절대 권력자 제왕이라 해도, 세계굴지의 대부호라 한들 집 앞에서 오대양 육대주(五大洋 六大洲)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겠는가.
제법 넓은 동창(東窓)의 커튼을 제끼면 바로 눈 아래 오대양 육대주가 펼쳐져 있다. 동이 틀 무렵 고운 햇살을 받아 육대주는 황금색으로 눈부시고 오대양은 아침이슬을 머금고 녹색이 짙어지다 못해 비취빛 바다를 형성하고 있다.
앞 정원에 그려진 세계지도 속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어디쯤에 있는가. 산수 수려하고 인정이 철철 넘치고 예술감각이 뛰어나고 두뇌 회전 속도가 어느 민족보다 빠르고, 인내심이 삼끈보다 질긴 백의민족(白衣民族)이 사는 곳. 현대 세계 흐름의 방향이 애매모호하고 방향감각의 촉수가 부러진 듯 격랑속의 부침(浮沈)하는 일엽편주(一葉片舟) 같기도 하고 정착지 찾지 못해 유랑하는 집시처럼 정신적 지표가 뚜렷하지 않은 현재 세계의 정세...지금이야말로 동서양의 예지를 두루 갖추고 국제사회의 동향을 여러 방면으로 깊이 인식하고 볼 수 있는 자기 비전이 뚜렷하고 또한 우리나라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일 수 있는 강한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 대한민국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가 이리저리 살펴본다.
해마다 이른 봄 잔디밭에 제초제를 뿌렸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실기(失期)하여 넓지 않은 앞 정원에 클로버 꽃이 만발했다. 아침 신문을 가지러 가면서 촉촉한 잔디밭에 앉아 손에 잡히는 대로 뽑아 보지만 끝이 없다.
너무나 넓게 퍼져 버린 클로버, 보다 못해 자루가 긴 쇠갈고리 둘러메고 나온 남편, 박박 소리 나게 긁을 때마다 솟아오르는 클로버 잎과 줄기가 순식간에 잡초 담는 쓰레기통에 가득 차 버린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등줄기에 줄줄 흐르는 땀. 작업을 멈추고 집안으로 들어와 샤워한다.
며칠을 계속해도 끝이 없어 결국은 홈 디포(Home Depot)에 가서 제초제를 사다 뿌렸다.
다음날 클로버 잎은 누릇누릇 변해가고, 신이 나서 계속 뿌려대니 자리 잡은 잔디뿌리까지 동반하여 말라갔다. 연이나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듯이 잔디밭이 황토 살을 드러내고 육대주가 형성됐다.
지구를 덮고 있는 면적은 바다가 훨씬 넓지만 우리 집 앞 정원의 세계지도는 육대주가 훨씬 많아서 이른 아침 태양이 솟아오를 때는 황금빛으로 분산돼 황홀하지만, 태양이 중천으로 솟아오르면 초대형의 부스럼 딱지 또는 천형(天刑)의 시인 한하운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토길’을 연상시켜 준다.
속이 상하고 창피해서 볼 때마다 좋지 않은 기분인데 지난 일요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이웃 부자(父子)가 우리 집 앞 정원을 보며 키득키득 웃으며 지나갔다. 또 다른 사람은 선 룸(Sun Room)에서 나무 가지를 자르고 있던 나를 부르더니 “비료를 너무 많이 주었군요”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위로를 건넸지만 은근히 제초제를 뿌린 남편이 원망스러워졌다. 볼티모어 북쪽에서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양 주를 동분서주하며 피곤할 터인데 휴식이나 취할 일이지 왜 쇠갈고리 둘러메고 나와 더욱 한 여름에 소득 없는 일만 하다가 ‘노인은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욕먹고 있는지... 잔디씨와 거름 흙 사다 뿌렸지만 새들이 와서 다 쪼아 먹어 버리고 땅은 건조하여 육대주만 더 넓어졌다.
긁어도 긁어도 사방팔방으로 한없이 뻗어가며 생착해 가는 강인한 생명력, 꽃말도 예쁘고 꽃도 옹기종기 다정하게 피어 있고 잎은 행운을 상징하는 클로버.
커뮤니티의 잔소리 간섭만 없으면 클로버 정원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세상살이 왈가왈부 말도 많지만 이래서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존재하는 것이리라.
연이나 처음에는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시작한 것이 소득 없이 일만 크게 벌여 놓고 아들에게 좋은 소리 듣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커튼만 제끼면 세계지도가 눈 아래 펼쳐져 있고 오대양 육대주를 내려다 볼 수 있으니 한여름에 참으로 커다란 선물을 안겨 준 셈이다.
임경전
은퇴 의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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