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50살이 되어 가는 조카가 중학교 때 이민 와서 얼마 지나지도 않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문을 주제로 지은 작문이 우수작품으로 뽑혀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많은 세월이 흘러 흑인 대통령까지 탄생했으니 격세지감이 있고, 킹 목사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직도 노골적인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활개치고, 미묘하고도 음성적인 인종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오바마를 향한 많은 적의가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래 전에 흑인 직장 동료와의 에피소드이다. 그 당시는 한창 워싱턴 시장 매리온 베리의 코케인 흡입 사건으로 떠들썩할 때다. 흑인시장에 대해 나와 논쟁이 불거질 때 그는 말하기를 “너는 이 문제를 논할 자격이 없다. 우리가 당한 모욕과 아픔을 너는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분노를 애써 참는 그의 모습이 섬뜩했고, 지우기 힘든 아픈 과거를 끌어안고 살아야만 하는 그의 슬픈 가슴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한 사건도 나의 기억에 남는다. 금발 미모의 백인여자와 흑인남자 사이에 자동차 접촉사고로 노상에서 시비가 붙었다. 화가 난 흑인남자는 그 여인이 안고 있던 애완견을 뺏어 바닥에 던진 사건이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수많은 경비를 쏟아 부은 신속한 수사 덕분에 일주일 만에 다른 주에서 그 흑인을 체포했다. 그 사건을 보며, 만일 그 미모의 백인여자가 흑인이나 다른 소수민족이었다면 똑같은 수사를 벌려 범인을 잡아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지 않다. 은근하고 교묘한 인종차별의 한 예라고나 할까?
바로 얼마 전 케임브리지에서 일어났던 유명한 사건, 하버드 대학의 흑인교수인 헨리 게이츠와 그를 체포한 제임스 크롤리 형사 사건을 다시 검토한다 들었다. 12명의 검토 위원들은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어떠한 훈련이 필요한가?" 혹은 “이 사건이 그렇게 많은 관심과 여론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무엇인가?"등을 중심으로 조사한다 한다. 단지 6분 동안 벌어진 사건, 그러나 대통령까지 한 몫 끼어든 이 기이한 사건과 같은 것이 과연 검토와 훈련, 교육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까? 신분으로, 용모로, 혹은 기능으로 우열을 가리기 좋아하는 죄성을 지닌 인간의 본질적 문제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흑인 학에 권위를 가진 이 교수는 자기의 신분과 명성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본인을 특별한 사람,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만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사하는 백인 경찰관에게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나를 다루고 있다(You don’t know whom you are messing with)”라고 한 말이 이 생각을 뒷받침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종차별에는 민감하여 이 사건을 인종차별로 몰아붙인 이 흑인 교수는, 본인도 모르게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차별(우월감으로 인해)하였다는 점이다. 이 점이 자기모순이라 생각된다.
사람은 모두 있는 그대로 특별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각자 독특한 목적을 가지고 독특하게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의 지위나 신분, 용모나 학식 등 외형적 조건이 남보다 낫다 하여 스스로를 우월감이라는 못된 방에 가둔 사람은 성경말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는 말씀을 두려움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학자도 정치가도, 성직자도, 스스로 믿음 좋다 여기는 신앙인도 모두 겸손히 가슴에 깊이 간직할 말씀이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