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네티컷에는 지역의 한인들을 위해 애쓰는 한인들이 꽤 있다. 한미자선재단의 이무용 이사장이 그들 중 한 명이다.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한 일을 돌아볼 때 많은 장학생들과 한글학교 어린이들이 성장, 사회의 한 일꾼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볼 때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동안 한글학교 및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불하고 후원한 한미자선재단 이무용 이사장의 한마디다. 앞으로는 좀 더 기금모금을 확장, 한미자선재단의 후원을 위한 회원을 모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 이사장은 지난 15일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곧 실천하여 우선 내년 6월까지 이 재단의 설립회원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또 지난 20년동안 이사회 자체만으로 운영하던 방침을 바꾸어 앞으로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회원을 모집하여 후원회 형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협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한국에서 경제기획원에 근무할 때 1969년과 1970년 사이 6개월 이상을 인도에 상주하면서 한국의 철도망을 확장하기 위한 레일(rail) 수입에 큰 공적을 남기면서 영어를 좀 더 유창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1972년 2월에 미국으로 이민온 이 이사장. 그는 뉴잉글랜드에 미국에서 유명한 교육도시가 많은 것을 참작하여 메사추세츠 보스톤 근방에 있는 로렌스에 정착하여 태권도장을 운영하였으며 1974년에는 이곳 커네티컷주로 이주하여 자녀 셋이 모두 유펜과 컬럼비
아 대학교에서 수학을 할 정도로 성공적인 결실을 맺은 한인이다.
20년전, 커네티컷 한인회 회장으로 일을 했던 이 이사장은 당시 교통국과 교섭하여 운전면허 시험을 한국어로 치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든 문제집을 유문희 이사로 하여금 이를 한글로 번역토록 하여 현재 이것이 시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또 한인회 회보도 이 이사장이 회장 당시 창간호를 발행한 사실을 아는 한인은 별로 없다. 태권도 사범으로 도장을 운영하면서 1984년에는 미국 테권도 연맹 회장으로 당선되었고 미국 대표선수들을 인솔하고 여러 나라에서 주최하는 세계 선수권대회에 많이 참가한 바 있는 이무용 이사장. 그는 1885년에는 미국 올림픽 위원회 정회원으로 선출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전 미국에서 두명 밖에 없는 태권도 9단의 자격증을 받았으며 1992년에는 태권도가 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하여 비록 달성은 못했지만 1993년에 사마란치 세계 올림픽 위원장에게 그 서명을 발송하여 2000년도 오스트렐리아 시드니 섬머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경기를 한 것은 나름대로 조그만 공적으로 생각한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한국인 미국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2003년도에는 한미자선재단의 이름으로 주지사 존 로올랜드에게 추천하여 한국이민사회와 학원, 그리고 문화 등 다방면으로 공로가 많은 김일평교수와 전혜성 박사를 위시한 11명에게 주지사의 공로 표창장을 수여하는 뜻깊은 행사를 마련하였을 분만 아니라 커네티컷 역사상 처음으로 주청사에 한국 태극기를 게양하여 한국의 날로 선포한 것은 그가 한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라면 업적이다. 주지사인 로올랜드는 이무용 회장과는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도 있었거니와 정치적으로 주지사를 태권도 명예 6단을 부여한 것은 한인사회와 주지사와 깊은 유대를 갖도록 한 것이었으며
로올랜드 주지사는 한국인 유지 40여명을 관저로 초대하여 조찬모임을 갖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넛 친목을 도모하는 뜻깊은 시간을 마련하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무용 회장의 그 활동이나 공로를 치하하면서 이를 잊지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2003년 한국에서 촛불시위 및 반미데모가 한창이었을 때 이무용 이사장은 당시 미국 태권도 사범연맹 회장의 자격으로 미국 국회 상원의원 100명과 하원의원 435명, 그리고 50명의 주지사와 뉴욕 및 시카고를 비롯한 대도시 시장 20명에게 “미국의 외교는 소수의 부정적인 시위와 감정에 좌우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다수의 한국인은 미국과 우호관계의 존속을 원하며 미국의 보호를 감사한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의 부인 앤나씨는 그 편지를 보낼 때 밤을 새면서 600통 이상의 봉투를 부치느라 입술이 다 불어터졌다고 하면서 보람된 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하였다. 늘 분주한 생을 살면서도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보살피는 이무용 이사장은 여생을 오로지 남을 기쁘게 할 때 나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하면서 많은 이들의 동참을 바란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이무용 이사장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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