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적만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온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눈이 먼 사람도 있고, 행색이 남루한 내 또래의 아이들도 있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수레에 생활용품을 싣고 다니며 팔던 사람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와 자주 갔던 명동거리와 백화점 앞에서, 그 화려함 뒤로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는 나에게 갖다 주라며 자그만 손에 돈을 꼭 쥐어 주셨다. 물건을 팔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 분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어머니는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수세미, 이쑤시개 같은 생활용품을 사곤 하셨다.
한국의 IMF경제위기로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을 때도, 어머니는 입학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에 못 갈뻔한 제자들을 도와 주시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당신을 위해서는 무척 아끼시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항상 잘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래서 인지 따스한 손길을 바라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작은 정성이라도 건내게 된다.
오 헨리의 단편 중에「추수감사절의 두 신사」라는 글이 있다. 이는 노숙자 스터피와 부유해보이는 노신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의지할 피붙이 하나 없는 노신사는 9년째 스터피에게 추수감사절 만찬을 대접해오고 있다. 매년 그렇듯이 레스토랑에서 자신은 먹지 않고 스터피가 먹는 모습만을 행복하게 바라본다. 식사 후 둘은 문 앞에서 헤어진다. 그런데 배가 터지도록 먹었던 스터피는 몇 발자국 못가 과식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다. 잠시 후, 노신사 또한 스터피가 있는 병원으로 실려오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노신사는 여유롭지 않은 생활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해 쓰러진 것이다.
노신사처럼 무리하게 굶어 쓰러지면서까지 사랑을 베푸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잘 구운 칠면조를 우리만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저러한 핑계로 작은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주위에 배고프고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한번쯤 돌아보는 나눔의 추수감사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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