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업가 미의원들에 뇌물...한미관계 악화
박동선, 한국에 쌀판매 920만달러 수익중 800만달러 로비자금 지출
워싱턴 포스트 연일 대서특필...반한감정 미주한인들에게까지 불똥
필자와의 인터뷰에 응한 김용식 전 외무장관(왼쪽)은 이 사건이 재미한인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70년대 중반 만 3년동안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미완의 장으로 끝난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 사건은 박동선이란 한 인물에 초점이 맞춰진 가운데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의 폭로로 시작된다. 한해 전 닉슨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온 워터게이트와 아주 비슷한 운명으로.1976년 10월15일자 워싱턴 포스트의 톱기사는 ‘한국이 미 의회 의원들을 매수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제목으로 장식되었다.
재미한인 실업가 박동선과 한국 정보기관(KCIA) 요원들이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뇌물을 건넸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서 9일후 한국측이 미 의원들과 고위관리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제공했다는 또 다른 후속기사를 보도했다. 한미관계를 격랑속에 몰아넣은 코리아 게이트는 이렇게 문을 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분노했던 미국인들은 의회마저 부패에 물들었다는 폭로에 충격을 받았다. 언론들은 이 사건을 제2의 워터게이트라고 부르며 그 진상을 파헤치기에 급급했다. 이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박동선은 62년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정치인들과 친분을 맺게 되었는데 그들과의 연결통로로 정치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교급 사교장 조지타운 클럽을 개장하고 플레이보이 비슷한 행적을 보였다. 그는 정치인들을 활용하여 대미 쌀 구입 대리권을 얻었고 이를 통해 상당액의 커미션을 챙기는 사업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의원들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것과 그 말고도 재미사업가 김한조, 김상근과 이상호 등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인물로 떠올랐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미 정보기관의 한국 청와대 도청사실이 드러나고 한국 정보요원 김상근과 손호영 등 2명이 미국으로 정치망명을 하는 등 이 사건은 실타래처럼 얽히고 섥힌 정치 스캔들로 에스컬레이트 됐다.
미 의회와 국무부는 박동선의 송환을 요구했으나 한국정부는 미국측이 청와대를 도청한 사실을 문제삼아 송환을 거부했다. 그후 한미간 여러 차례의 회담을 거치면서 1977년 12월31일 박동선이 미국정부로 부터 전면 사면권을 받는 조건으로 증언에 응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듬해 미국에 입국한 박동선은 상하원 윤리위원회 등 증언에서 한국에 대한 쌀 판매로 약920만 달러의 수익을 챙겨 그중 8백만 달러를 로비활동에 지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공개청문회에서는 전 하원의원 리처드 해너 등 32명의 전 현직 의원들에게 약 85만달러의 선거자금을 제공했으며 197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에게도 2만5천달러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파문에 대해 미 법무부와 의회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23명의 미 정치인, 관료들이 소환되고 참고인 진술을 받은 결과 현직의원 1명만 뇌물수수로 유죄판결을 받고 3명이 의회 차원에서 가벼운 징계를 받는 선에서 끝났다. 그후 의회가 그 역시 뇌물제공 의혹을 받았던 전 주미한국대사 김동조의 증언을 요구함으로서 한미간에 새로운 갈등이 유발되었으나 막후절충을 벌인 끝에 1978년 9월19일 김동조가 미 하원 윤리위원회의 서면질문에 답변서를 보내고 10월16일 윤리위원회가 조사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사건은 78년말 일단락되었다. 이때의 막후 활동에 대해 당시 주미대사였던 김용식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 전직 공무원으로서 지켜야 될 기밀준수 한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특히 재미한인들에게 이 사건이 끼친 악영향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피력했다.
전직대사의 의회 증언은 외교관 신분에 관한 국제관례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국제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실현성이 없는 대신 전직대사의 자의에 의한 전화, 또는 서신을 하원의장에게 전달하면 어떻겠느냐는 하나의 안을 그들에게 제시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뉘른베르그 전범재판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악명높던 리언 재워스키 특별조사관과의 날선 면담도 있었고 하원의 대한원조 삭감 압력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그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김동조의 서신 전달과 함께 이 사건은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는 것.
한편 훨씬 후의 일이지만 박동선 역시 필자와의 면담에서 당시 미국법원이 자신을 기소한 혐의는 크게 두 가지였다고 말했다. 로비스트로 정식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의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혐의는 아무것도 입증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조국에 도움을 주기 위해 했을 뿐, 한국정부로 부터 임명이나 봉급을 받은 일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로비스트가 아님을 강변했다고 한다. 또 의원들에게 준 돈은 조건 없는 정치자금이었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외국인들은 개인 자격으로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주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고 회고했다.
조사를 받을 때 한국정부가 이 사건을 주도하지 않았느냐고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끝까지 부인했고 혼자서 모든 걸 뒤집어 쓰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에 일이 잘 수습되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유엔의 이라크 석유, 식량계획에 관련된 비리 혐의로 미 연방경찰에 체포돼 5년형을 선고받고 뉴욕주 웨스체스터 교도소에서 복역했던 박동선은 미국정부에 협력한 점과 건강이 좋지 않은 점 등이 인정돼 3년1개월로 감형을 받은 데다 모범수 감면 조항을 적용받아 만기에
5개월 앞서 지난해 9월10일 석방돼 귀국했다.
뉴욕의 한 파티에서 만난 박동선과 필자
■ 코리아 게이트, 미주한인들에 미친 영향
한인비즈니스에 의혹 눈초리
한인청과상 매상 급감 피해도
코리아 게이트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재미한인들이 겪은 수난도 적지 않았다.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한인들이 조사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세무당국으로 부터 정밀검사를 받는 괴로움을 겪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의례적으로 주는 선물도 의심을 받았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들은 한국 어린이들이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거절한 경우도 있었다. 비즈니스를 하는 한인들에게도 그 사업자금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특히 새로 점포를 꾸미는 동포들에게 KCIA 자금이냐고 묻는 경우도 많았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사회로 부터 좋지않은 눈총을 받았던 통일교의 자금이 흘러나왔는지 묻는 경우도 있었다. 무니(통일교도)를 배척하는 의미에서 상품 보이콧을 하는 지역도 있었다. 특히 뉴욕일원의 교외 부유층 지역에서 한인 청과상들이 매상이 급감하는 손해를 보았다. 이러한 분위기를 확인 없이 전한 뉴욕 데일리 뉴스에 청과협회 회원들이 단체로 몰려가 항의시위(1977년 6월15일)를 한 끝에 사과를 받아낸 사건도 발생했다.
뉴욕 데일리뉴스 사옥 앞에서 항의 시위하는 청과협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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