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달러 안뺏기려다 운명 달리해...경찰, 한인들 모아놓고 세미나도
인종편견.언어.풍습 등 갖가지 이유로 아메리칸 드림 문턱서 좌절
1975년 10월26일 저녁 플러싱 소재 화잇스톤 볼링장에는 한인들을 비롯해서 일본인, 중국인등 국적이 다른 동양계들이 그룹을 지어 볼링을 즐기고 있었다. 48레인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모든 레인이 만원이어서 기다리는 그룹도 있었다. 뉴욕타임즈의 표현대로 이날은 ‘오리엔탈 나이트’였다. 11시쯤 되었을 때 한쪽에서 총성이 연달아 들렸다. 3명이 현장에서 쓰러지고 4명이 현장을 빠져 도망쳐 나가고 있었다. 밖에는 골드색 플리머스 세단이 기다리고 있다가 이들을 태우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보울링 레인에서 총탄을 맞고 쓰러진 3명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박종성(37)과 학생 안용성(17)이 현장에서 숨지고 함께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채 화장실로 피신했던 이경수는 살아났다. 이튿날 아침 사건 보도에 접한 한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몇만명 되지 않는 한인사회에서 그와 같은 큰 사건을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보울링을 하던 한인여성들이 중국계로 부터 모욕을 당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한인 청년들이 역성을 들다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현장을 보도했던 10월27일자 뉴욕타임즈는 무엇때문에 사건이 발생했고 가해자가 누군지 전혀 파악되지 않은 현장상항을 그대로 보도했다. 2년 후인 1977년 이사건 담당 경찰은 차이나타운에서 비룡파 중국인 갱단 두목을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으로의 새로운 이민물결이 밀려 들어왔던 70년대 중반부터 80년에 이르는 시기, 이민 초기의 한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미국사회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아메리칸 드림의 문턱에서 세상을 등졌다. 그들 가운데에는 언어의 미숙으로 인해, 미국사회의 풍습에 익숙치 못해서 이른바 문화충격으로 인해, 또는 캐시 레지스터의 몇십 달러 지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대항하다 강도들의 희생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오죽하면 피해를 자주 당하는 한인들을 모아놓고 경찰관들이 세미나를 열어 범죄의 대상이 되었을 때 ‘먼저 심호흡을 하고 가족부터 생각하라’는 충고를 했을까.
당시 범죄피해의 가장 쉬운 타겟은 24시간 문을 열고 현금을 많이 취급하는 한인청과상이었다. 방범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밤중에 털렸다 하면 주로 한인이 운영하는 청과상이나 델리가게였다. 경찰이 충고하듯 강도가 침입했을 때 반항하지 않고 캐시 레지스터를 통째 내놓으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법 한데 범인에 대항하거나 뒤쫓다 생명과 맞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이른 아침 브로드웨이 도매상가에서는 주머니 불룩하게 현금을 지니고 시장을 보다 대로상에서 탈취당하는 사건도 자주 있었다. 스프레이를 뿌려 잠시 기절시키고 현금을 강탈하는 경우도 있었다.
■ 70년대 중반부터 80년까지 뉴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인들의 경우(한국일보 보도)를 살펴보았다.
1 1973년 12/26 브롱스 K & S 한국식품점에 권총강도 침입, 주인 장상숙(38) 부상,
3 1975년 10/26 화잇스톤 볼링장에서 비룡파 중국인들과 싸운던 한인 2명 사망, 1명 중상.
1 77년 2/14 필라 교포 주부 대낮 괴한에 망치 맞아 피살.
2 2/23 뉴왁 소재 교포 의류상에 무장강도 침입, 손순호 총 맞고 중상.
2 6/25 한인 청과상에 강도 침입 총격으로 중상.
4 10/24 브루클린 곽종소, 상가 골목서 피습 사망, 알몸 피투성이로 발견, 가족은 서울에서 이민수속 중.
5 10/28 새벽시장길 교포 어물상 박승우 피습, 강도와 결투 끝에 부상, 어물상 동업자들 위로금 전달
6 12/27 삼복식당서 한인형제 강모, 중국인들과 시비끝에 총상 입어.
7 78년 1/9 뉴왁 옷가게서 백남실 피살.
8 9/5 박석배 여인 스태튼 아일랜드서 변시체로 발견
9 10/12 헌츠포인트서 한인 청과상 김충열, 송동주 2명 미국인과 주차시비 끝에 총격 피살.
10 11/8 청과상 피습 범인 1명 체포
11 한인 청과상 노창해 길 건너다 차에 치어 중태.
13 12/18 40대 한인 김형수, 아파트 1층 비상구서 칼에 찔려 사망.
15 79년 5/24 브루클린 한인 이현호, 자영 잡화점서 히스패닉계 총 맞아 피살..
16 3/8 무장강도 한인가게서 총격전 괴한 2명중 1명 사망, 주인은 목 관통상 입어
18 3/14 교포 신향숙 등 의사 부부 4명, 중부뉴저지서 주말 파티 귀가 길에 교통사고로 사망.
19 6/5 한인의사 부인 남편에 총격, 뉴저지 권복희, 부부싸움 끝에.
20 9/28 맨하탄 정금사에 권총강도 침입 , 주인 손 묶고 1천여달러 강탈.
21 11/11 한인 맥주도매상에 무장강도, 종업원 3명 모두 총 맞고 입원, 1명 중상.
그런가 하면 경험 없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자 이민의 꿈 접고 자살의 길을 택하는 경우와 이민생활을 비관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23 78년 5/9 파멸된 이민의 꿈, 사업실패 청과상 오창석 투신자살, 이민 10개월 청과상 개업 2주만에 유가족 4명 남기고.
24 7/3 한인 할머니 서금옥, 음독자살
26 9/5 한인 여성 오영인(28), 아파트서 투신자살.
한편 77년 7월15일 발생한 뉴욕의 대정전 사태 때 약탈당한 한인상인들도 많았다. 어둠속에 흑인들이 난입, 약탈하는 바람에 한인 청과상, 가발상 등 생활터전을 잃고 비탄에 빠진 한인들도 있었다. 정전은 25시간만에 끝났지만 권총을 들고 밤새 가게를 지킨 용감한 상인들도 있었다. 이와 같이 범죄 피해를 입는 과정에서 한인상인들은 방범 상식을 터득하게 되었고 미국이란 나라가 법에 호소하기 전 스스로 자기를 지켜야 되는 셀프 헬프의 나라라는 점을 익히게 되었다.
자주 발생한 헌츠포인트 청과시장
■ 샌즈 변호사 자격 정지시킨 김형수 사건
미망인 보험료 수수료 33%나 챙기려다
한인여성회 항의로 수포
77년 12월 퀸즈의 아파트 계단에서 숨진 김형수 사건은 한동안 뉴욕한인사회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미망인과 4남매 생계가 막연해지자 한인사회가 가족들을 보살피기 위해 손을 걷고 나섰다. 특히 이무렵 여성회를 발족시켜 한인여성들의 권익활동에 앞장섰던 염진호가 미망인을 돕기 위해 캠페인을 벌였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보험금 수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샌즈 변호사가 보험료 5만달러 가운데 수수료 33%를 요구하는 바람에 물의가 생겼다. 염진호는 무리한 요구라고 항의하고 이 사실을 변호사협회와 보험회사에 알렸다. 샌즈 변호사측은 정당한 대가이며 유족 측의 사정을 고려한 조지라고 강변했으나 뉴욕한인회가 개입하여 변호사협회에 진정하는 바람에 사건이 확대됐다.
여성회는 범교포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소송비와 유가족 돕기 모금도 벌이는 등 샌즈 변호사를 압박했고 사건을 손창문 변호사에게 위임했다. 결국 보험사는 새로운 수표를 미망인에게 전달했고 얼마후 샌즈변호사는 협회로 부터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당시 여성회를 이끌던 염진호 회장(왼쪽)이 샌즈변호사(오른쪽)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조종무<언론인,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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