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통의 청첩장을 받았다. 누가 보냈는지, 편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아 혹시 다른 집 편지가 잘못 배달되었는가 하고 겉봉을 다시 보았다. 주소도 분명하고 이름도 우리 이름이 확실했었다.
그런데 누가 결혼을 한다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보통 아무개의 자녀라고 시작하면 알아낼 수 도 있을 터인데 부모의 이름도 없고 Irene McNeely and Robert Heath라고 신랑 신부 이름만 있었다.
한참 동안 수수깨끼 같다고 생각하던 우리는 “혹시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냐?”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전등불이 켜지듯 동시에 “아-Bob이 장가를 가는구나!”하고 말했다. “아니, 그 사람은 칠순 노인일텐데!”내가 의아한 듯 말하자 “왜, 노인이라고 장가 못가나?” 남편의 대답이었다.
5년 전에 그가 장암에 걸려 치료를 받으며 고생했었다. 그러던 중 얼마 후에 부인이 또 장암에 걸려 고생할 때 그 부부를 위해 기도하던 일들이 생각났다. 2년 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났을 때 그는 우리들에게 아내를 잃었다고 말하며 눈에 눈물이 듬뿍 고여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1월 30일 토요일 결혼식 날, 아침부터 눈이 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눈이 내린다고 하는 겁나는 일기 예보는 우리의 발을 묶으려고 했지만 울먹거리던 파리한 그의 모습이 우리를 강하게 끌어당겨 새로운 만남의 행복을 빌며 축하해 주기위해 결혼식에 갈 수 밖에 없었다.
눈이 삽시간에 얼마나 오는지 자동차 앞창에 붙은 얼음을 한손으로 떼어 내며 가도 곧 얼음 덩어리가 엉겨 붙어버렸다. 앞이 보이지 않아 고속도로를 천천히 20마일로 달리면 길 떠난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어렵게 거의 2시간 걸려 도착했다.
아름다운 힐톤 메모리얼 교회당 안에는 이미 축하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눈과 바람이 몰아치는 바깥 세상과는 관계가 없는 듯 아늑하고 평화스러웠다.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젊고 미모의 청년을 기대 했는데 지팡이를 짚고 있는 등 굽은 할아버지가 예복을 입고 서있고 신랑의 아들 둘 합해서 4명이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신부 쪽은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자매인 할머니들이 신부에 앞서서 등장하고 어린 손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링 보이는 생후 6주가 된 귀여운 아기였다. 이 아기는 흰 예복을 빼입고 링 쿠션을 무릎에 놓고 예쁘게 장식된 유모차 안에서 느긋하게 자고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신부일가?” 신부 입장이 기다려졌다. 웨딩마치가 시작되며 문이 열리고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젊은 사람들도 무색할 정도로 육체미가 한껏 들어나 보이는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생글 생글 웃으며 당당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아내를 잃어버렸다고 한숨 짖던 힘들고 어려웠던 날들, 그러나 이곳에 서 있는 신랑은 옛날 초췌한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던 노인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없고 홍안의 소년 같이 마냥 행복한 미소로 신부를 맞이하고 있었다.
만물이 꽁꽁 얼어붙은 추운 겨울, 하얀 눈이 덮인 사이를 비집고 나와 햇빛을 보려고 머리를 들고 나온 팬지꽃들의 하늘거리는 미소 같았다.
우리 풍속으로는 민망스러워서 간단히 조촐하게 치러질 결혼식이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시간까지 아름답게 장식하는 듯했다.
아버지 어머니의 행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자녀들, 할아버지 할머니의 결혼을 마음껏 축하하는 손자 손녀들, 진정으로 사랑하는 친지들로 부터 축하를 받는 참으로 흐뭇한 결혼식이었다. 해피엔딩의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더욱 험해서 자동차들이 댄싱이라도 하듯이 이리저리 미끄러져 도로 밖으로 ‘팽-’ 돌기도 하는 위험한 길을 비상 신호를 반짝이며 조심히 가고 있었다. 분명히 무섭고 겁이 났어야 했는데 노부부의 행복감이 넘쳐서 우리에게까지 와 닿았던지 싱글 벙글 대화를 나누며 집에 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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