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찌푸린 하늘은 마치 밑이 빠진 것처럼 엄청난 눈을 쏟아 붓더니, 오늘 아침 시리도록 차가운 푸른 하늘은 언제 그랬냐고 시치미를 뗀다. 온 대지가 순백으로 찬란한 아침. 흰 목화송이 눈꽃을 담뿍 안은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태양빛이 흰눈에 부서지는 현란한 풍경에 창조주의 솜씨를 찬양했다. 문학적 감정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하며 추억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인생에도 이와 같이 고난의 눈발위에 반드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주간은 조마조마, 아슬아슬, 그러나 참 감사한 기간이었다. 한국 식약청장을 거쳐 현재 서울 약대 교수인 동창과 그 아들이 우리 집에 머물며 존스 합킨스 병원(Wilmer Eye Institute)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약 10년 전에 오른쪽 눈 망막박리 현상으로 이곳에서 수술 후 어느 정도 시력을 회복해 감사했는데, 이번에는 왼쪽 눈에 백내장이 악화되어 다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망막박리를 경험한 환자는 반대쪽 눈의 백내장 수술시 망막박리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정상 환자보다 높기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안과병원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수술은 대성공이었고, 그 후 절대 안정을 취해야 되는데, 집에 와서는 마취 기운 때문에 두 번이나 심하게 구토를 했다. 구토시 눈에 힘이 주어졌으리라 걱정되어 마음이 초조해 다만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잘못되면 양쪽 눈이 다 잘 안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수술 다음날 일찍 수술 의사의 사무실에서 안대를 떼고 눈을 떴는데, 그 아들의 첫 마디가 “야! 정말 잘 보이네요”라고 기쁨의 탄성을 지를 때 나의 염려는 눈 녹듯 사라졌다. 여러 가지 신체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이 아들은 수술 전 항상 눈에 더러운 것이 붙은 것처럼 갑갑했고, 책을 읽기 힘들어 주로 컴퓨터로 공부했다고 한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비록 수술에 일만삼천불이라는 거금을 지불했지만, 시력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한편 이렇게 비싼 의료비 때문에 의료보험 개혁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천사백만의 무보험자를 위해서라도.
방문한 친구는 교회 장로이며, 그 아들 또한 신실한 기독교인인데, 이번 방미의 모든 일정이 여러 번의 폭설을 피해 기가막히게 완전하게 진행되어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치료받은 기쁨이 배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실 귀국하는 날까지 아슬아슬한 에피소드가 있다. 이들을 공항에 모시기로 한 분이 도저히 집에서 자동차를 빼낼 수가 없다고 당일 아침에 연락이 왔고, 공항까지 가는 수퍼 셔틀 서비스조차 연락이 안 되었다. 우리 집 앞길은 눈을 치우지 않아 나갈 수가 없기에 당황한 나는 이곳저곳 연락을 취하는 동안, 믿음 좋은 친구는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평소에 많은 덕을 쌓아 제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 친구교수의 제자들에게 연락이 되었고, 지원자가 눈길을 헤치고 달려와 공항까지 모셔다 드렸다. 교수의 보람은 훌륭한 제자를 많이 두는 것이라 생각되니 이 친구가 참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소에 존경받을 만한 덕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겠지만.
지난 일 돌이켜 보니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았지만, 너무나 감사한 일이 많은 지난주였다. 믿음 안에서 나눈 많은 대화도 참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된다. 이 친구는 출발 전 나 모르게 정성어린 감사 편지와 선물을 놓고 갔는데, 친구의 아름다운 감사의 마음과 선물을 받았지만, 선물을 받지 않더라도 나의 조그마한 도움으로 친구의 아들이 시력을 회복하여 나는 기쁘고 행복하니 그 자체가 이미 나에게는 큰 보상이라 생각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는 성경 말씀은 참 진리임을 다시 깨닫는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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