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었다.
4천 5백만 국민은 물론이고 해외 동포 까지도 김연아의 경기를 보고자 마음과 발걸음이 바빴었다. 어떠한 약속이나 할일들을 뒤로 미루거나 당기면서 말이다. 연아는 점프, 회전, 예술성, 미 어느 것 하나도 지적 할 수 없이 완벽 했고 대한민국의 피겨 역사와 세계 피겨 역사를 새롭게 기록 하게 됐다고 매스컴이 지면을 도배한다. 참으로 감사하고 기쁘다.
또한 피겨 스케이트는 서양의 전유물처럼 여겨 왔던 인식이 아시아권으로 넘어 왔음을 연아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은 점수가 말해 주지 않는가.
이로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피겨 여왕으로 우뚝 선 김연아는 불가능은 없다는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심어 주었다.
연아는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의 훈련과 다른 사람의 피겨 기술을 의식 하지 않고 오직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했기에 좋은 결과를 이루었다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영예의 시상식에서 캐나다 대표 조애니 로셰트 선수가 함께 현지에 도착한 어머니가 이틀 전 사망한 아픔을 딛고 이루어낸 동메달을 받으며 눈물을 흘릴 때 연아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녀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처럼 생각하는 한국 여성 특유의 사랑을 실감한다.
연아의 이처럼 순수함과 겸손함과 아름다운 품성과는 달리 한편으로는 연아를 아끼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지나침과 비뚤어진 부분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연아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도 크다 보니 상대의 선수가 실수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부류도 있었을 테고 국가 대 국가 간의 감정의 골이 순수한 스포츠 선수에게까지 연계해서 스포츠의 순수함과 위력은 국가 간에 맺힌 정치도 풀리게 할 수 있고 단절된 인간관계도 아름다운 관계로 풀어 갈수 있는 매력 아닌가.
이렇게 관심과 응원이 편중 되다 보니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은 허탈감 내지는 소외감을 느낄 것이다.
이를테면 승리자에게는 환호와 영광이 따르지만 패배자에게는 좌절과 굴욕이 따르는 안타까운 현실. 그러기에 어떤 경기에서든 너 죽고 나 살기식 싸움도 불사 한다.
패자에게도 위로와 관심과 격려를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미래가 있지 않는가.
1932년 LA 하계올림픽에서 육상 5천 미터의 결선에서 핀란드의 대표 라우리 라티넨과 미국 대표 랄프힐이 거의 같은 시간에 결승선을 통과 했다. 지금처럼 기계가 발달하지 않았지만 사진 판독을 통해 핀란드의 라티넨이 우승자로 결정 되었다.
그럼에도 식장에서 진퐁경이 벌어졌다. 두선수가 서로 상대를 우승자로 우긴다. 그러면서 상대를 윗자리로 떠밀지 않는가. 리티넨은 자신의 반칙을 주장했고, 힐은 정당한 경기였다고 상대를 축하 해준다.
이 광경의 내용을 마이크를 통해 들은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두 선수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내 주었다. 역사를 통해 들어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광경이 연상된다.
승리를 양보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게 올림픽 창립의 정신 아닐까.
지금은 모든 물자가 풍부하고 생활의 편의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 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강퍅해지고 조급하다.
올림픽의 근본정신은 자존이 아니라 친선일진대 본래의 정신으로 회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나만의 환상이고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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