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작년 12월 중순경인가 보다.
그날은 두 군데를 바삐 움직여야 할 모임이 있는 날이기에 잔뜩 옷차림에도 신경을 좀 쓰느라 했고 여자들은 머리가 어설프면 암만 옷을 잘 입어도 맵시가 그저 그러니 난 한 달 전에 구입한 부분가발도 아닌 전체가발을 진짜같이 폼 나게 쓰느라 이리저리 거울을 보고 진짜같이 위장(?)하고 모임에 참석했다.
첫 번째 모임을 허둥지둥 마치고 책 한권을 얻어 들고 휑하니 행사장을 빠져나와 저 편 주차장에 세워둔 차의 시동을 걸었다.
처음 써보는 가발인지라 온통 나의 신경이 곤두서 차에 달린 조그마한 앞 거울 작은 불빛아래 가발 모양새를 다듬고 보고 또 보면서 바삐 다음 행사장으로 달려갔다.
나이 탓인가 저쪽에서 달려오는 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내 시야를 어찌나 방해하는지 놀란 토끼눈을 뜨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작에서 한 시간이나 늦었으니 얼마나 내 마음이 바빴겠나. 차 세울 빈 주차장이 없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고 있는데 마침 뒤꽁무니에 빨간불이 켜지며 한차가 빠져나가는 틈을 이용해 냅다 차 앞부분을 들여 밀었다.
정말 행운의 주차 공간을 선심(?) 쓴 어느 백인에게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미소 짓던 그날.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길을 더듬으며 식당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무엇이 내 묵직한 털 구두 앞부분에 ‘탁’ 걸리는 소리와 함께 정신 차릴 여유도 없이 맥없이 내 육중한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고. 나는 어두운 밤이지만 누가 볼까봐 필사적으로 일어나려고 허둥댔고 때마침 지나가는 운전자들에게 들켜 “괜찮으세요(Are you ok?)”하며 도움을 주겠다는데 난 어린애같이 넘어진 것이 부끄러워 “괜찮습니다(I am ok)”를 연발하며 무거운 코트자락을 털고 저 만치 내동댕이쳐진 핸드백을 잡아당겨 바쁜 걸음으로 식당문을 밀고 들어섰다.
바로 정면에서 식사하던 어느 한인 단체의 회장님이 나를 보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데 나는 그 분이 언젠가 우리 집 강아지 문제로 얽힌 일이 있어 그랬나 했었는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거울을 보는 순간 아~악 내 몰골이라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아연 실색했다.
내 머리위에 가발이 얹어진 것을 까맣게 잊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넘어지는 순간의 압력으로 제멋대로 방향을 틀고 흐트러져 산발이 되어버린 나의 머리, 입술에선 피가 흐르고 내 시력을 돕던 안경은 온통 긁혀 더 이상 내 안경이 될 수가 없었고 무릎의 통증은 말이 아니었다.
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내가 밖에서 누구하고 대대적인 육박전으로 얻어터졌나 무척 궁금증과 더불어 쉽지 않은 코미디를 본 듯 했을 것이고 난 모임에 참석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쓸쓸한 차속에서 갑자기 떠오른 우리들의 인생길 대인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에 젖어보았다.
진짜와 가짜, 진실한 사람과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얽히는 삶속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한동안은 인심을 얻는 척 하다가 중요한 때에 표를 확실히 내는 사람, 진정성 없는 말과 행동은 어리숙한 아이조차 알아챈다고 한다.
우린 언제나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며, 겸손하고 거짓 없는 진실함 속에서 오늘 죽을 것처럼 슬기롭고 멋지게 후회가 남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깊이 생각하며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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