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아의 루즈 종목 선수가 개막식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연습도중 숨지는 사건으로 심상치 않게 21회 동계 올림픽이 시작되었는데, 그 후 큰 불상사 없이 막을 내려 참 다행이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한국 선수들의 선전, 특히 올림픽의 꽃인 여자 피겨 스케이팅에서 환상적 연기로 압도적 우승을 한 김연아로 인해 이번 올림픽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오래 오래 머물 것이다. 올림픽을 시청하며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육체는 참 아름답고, 신묘막측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종전과 같이 이번 올림픽에서도 역시 많은 감동적 이야기는 물론 씁쓸한 여운도 남겨놓은 채 막을 내렸다. 캐나다의 피겨 스케이트 선수 조아니 로세트는 시합 이틀 전에 갑자기 어머니를 심장마비로 잃고서도 혼신을 힘을 다 해 경기에 임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경기 후 눈물을 펑펑 쏟는 모습은 나의 가슴을 너무 슬프게, 그러나 진한 감동으로 사로잡았다.
아마도 이번 올림픽 기간에 한국의 신문, 방송에 제일 많이 오른 외국 사람은 쇼트 스케이트 심판 제임스 휴이시라 생각되는데, 여자 3천 미터 계주에서 한국팀에 실격을 안겨 준 분이다. 과거의 악연도 있고 해서 그런지 이번에도 심한 비난을 들었다. 그러나 이제 경제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특히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를 잡은 성장 한국의 국민, 매개체들은 좀 더 의연하고, 공평하고, 여유 있는 반응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심지어 이분은 살해 협박을 받아 신변보호를 요청했으며, 마지막 날 경기의 심판에서 신변안전 문제로 제외되었다 하니, 누구의 협박인지 알 길 없으나 올림픽 정신과는 한참 어긋나는 추악한 행위다.
이번 대회 중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밤과 낮처럼 대조적 태도의 두 선수인데, 남자 피겨 스케이트 부문에서 은메달을 딴 러시아의 플루쉔코와 금메달의 미국 선수 이반 라이색이다. 워낙 기술이 뛰어나고 경력이 화려한 플루쉔코는 이번에도 금메달은 당연히 자기 것이라 믿었는지, 본인은 물론 러시아 수상을 비롯해 온 국민이 금메달을 도둑맞았다고 했고, 라이색의 기술을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는 시상식 때 금메달 단상에 먼저 올랐다가 자기 자리로 내려가 자기의 속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해 관중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들었다.
반면에 라이색의 태도는 참 성숙하고 아름다웠다. NBC의 봅 코스타스 아나운서와의 대담에서 자기 인생의 가장 기쁜 시점에 부정적 발언을 듣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솔직히 말했지만, 그는 한 번도 플루쉔코의 태도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플루쉔코는 자기의 우상이며, 그의 발언은 본심이 아니라 일시 흥분된 감정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감싸기까지 했다. 2014년 러시아의 동계올림픽에 참석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러시아인들은 자기를 보기 원치 않겠지만, 비자를 내주면 참석을 고려하겠다고 웃으며 여유 있는 대답을 했다. 이제 금메달을 땄으니 대통령을 만나든지, 아니면 디즈니월드에라도 놀러 갈 계획이냐는 질문에, 작년에는 올림픽 준비하느라 나만을 위한 이기적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봉사기관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정말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대답했다. 대담을 마치면서 코스타스 아나운서는 당신의 대답은 올림픽의 금메달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진정으로 칭찬했다.
영어에 이러한 말이 있다. “당신의 적성보다는 당신의 태도가 당신의 위상을 결정한다.”
김연아 양은 물론 월등한 실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각국의 언론에서 많은 칭찬과 유례없는 각광을 받은 것은 연아양의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우아한 자태와 겸손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연아양도 라이색군도 금메달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플루쉔코는 애석하게도 금메달과 함께 사랑도, 존경도 놓쳤다고 생각된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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