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상과 진실’. ‘자아와 타자’ 관계 조명
비디오와 퍼포먼스, 혹은 사진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품들이 아마 한인 여성 아티스트들이 뉴욕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분야일 것이다.
버려진 맨하탄의 폐허들을 찾아 알몸으로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었던 김미루씨가 뉴욕과 한국에서 모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못지않게 도발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들이 젊은 한인 아티스트들에 의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5월 뉴욕과 한국에서 바쁜 일정을 앞두고 있는 이 제이, 강 경은 두 명의 퍼포밍 비디오 아티스트를 만났다. 이씨는 2008년 카파(Korean Arts Foundation of America) 선정,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인정받은 작가이고 강씨는 이제 학교를 마치고 뉴욕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고
있는 신예 작가다.
■ 이제이
‘진짜 가짜’ 통해 일상 허구 벗기는 시도
얼마 전 한 무용단체가 주최한 페스티벌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봤다. 6개 단체들의 짧은 공연들을 보고 무용에 문외한인 입장에서 느낀 첫 번째 소감은 “왜 이렇게 다들 몸짓들이 고통스럽지?”였다. 무용수들은 절대 웃지 않았고 대부분 무표정이거나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고뇌와 고통, 절망 등을 표현해야 만 현대무용인가? 삶의 환희, 희망 이런 것들을 밝게 웃는 얼굴로 힘찬 점프로 표
현하면 안되는 것인가?
갤러리나 뮤지엄에서 비디오 아트를 보면서도 많은 일반 관객들은 비슷한 물음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대부분 너무 어렵고 실험적이고 음울하다. 반면 이 제이씨의 작품들은 그렇지 않다. 단순하고, 유머러스하고, 재치있고, 기발하다.(적어도 일반인의 눈에는) 이씨 자신도 그렇게 말한다. “같은 미술가가 봐도 참 이해 안되는 비디오 작품이 너무 많아요. 왜 그렇게 어
렵게 하는 거예요?”그러나 ‘의도된 조악함’이 돋보이는 그의 ‘가벼운’ 작품 속에서 가상현실이 만들어내는 헛된 욕망에 휘둘리는 세태를 풍자하는 메시지들은 언제나 진중하면서 일관되다. 이씨가 직접 욕조를 동동 떠다니는 모습을 촬영한 카파 수상작 ‘동네 목욕탕’ 연작에 이어 5월 한국 각지에서 발표될 ‘지중해’ 역시 작가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관념과 이미지의 허상을 조명하는 비디오와 사진작품들이다.
“광고에서 그런 말들 너무 많이 사용하죠. 지중해식 스타일 음악, 지중해 풍의 푸른색 등등,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인데요? 어떤 푸른색이 지중해색이죠?” 사실은 아무도 실체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생산해서 판매하고 대중은 기꺼이 소비할 뿐이다. 하지만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들이 실체가 없다고 해도 그것들은 바라는 ‘욕망’만은 진짜고 실재한다. 그리고 욕망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갈수록 정교하게 진짜를 흉내 내고 있다. 이
런 욕망과 진짜와 위조의 구분이 불가능한 현실이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지점이다. 회화와 사진이 전공인 작가가 비디오 작업을 시작한 이유도 “가짜인 것과 헛된 것을 ‘진짜 가짜’처럼 보이게 함으로서 일상의 허구를 벗기는 시도”를 함에 있어 비디오가 가장 유용한 매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작가는 5월 중 현대 한국미술의 중요한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경기도 미술관과 신사동의 코리아나 미술관, 중앙도서관 등에서 전시를 하고 6월에는 브루클린의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다. <박원영 기자>
5월 한국에서 소개될 이제이 작가의 최근 작 ‘지중해’의 비디오 스틸 컷.
■ 강경은
어려움 극복하고 융화시키려는 희망 담아
온몸을 솜사탕으로 감싼 후 허물을 벗듯 솜사탕을 먹는 작가의 퍼포먼스 비디오 ‘해피 버스데 이’의 비디오 스틸 컷.
강경은씨가 5월 13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32가 한인타운에서 라이브 퍼포먼스 ‘섬(Islands)’을 선보인다. 홍익대학교 회화과 대학원과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강씨는 지난해부터 스코히건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Skowhegan School of Painting & Sculpture)에 거주 작가로 선정되어
퍼포먼스와 비디오, 설치, 드로잉, 사진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작가는 “뉴욕의 공원, 거리 또는 특정 공간에서 현장 사람들과 함께 공유 할 수 있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통해 한국과 미국 사이의 장소의 이동에서 분실된, 또는 새롭게 만나는 자아와 타자간의 연결고리를 끊임없이 작품에 담아왔다”고 설명한다.
‘섬’의 퍼포먼스는 아주 간단하다. 고향인 마산에서 작가의 어머니가 직접 보내준 몇 개의 돌을 바닥에 놓고 그 돌을 하나씩 밟아가며 아주 천천히, 아주 힘겹게 전진하는 내용이다. 허리를 굽히고 일일이 돌을 놓아가며 몇 시간 이상씩 움직이는 육체적인 고행이기도 하다. 보통 퍼포먼스를 어렵게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섬’은 형식만큼이나 전해주는 내용도 직설적이다. 한 발짝씩 힘겹게, 어렵게 심리적인 외로움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민자로서, 아티스트로서 뉴욕에 적응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발을 딛도록 큰 힘을 주는 것은 ‘고향에서 온 돌’로 상징되는 어머니(혹은 가족)의 사랑이다.
퍼포먼스가 행해지는 32가는 뉴욕 한인들에게는 기회와 성공의 땅이다. 동시에 여전히 분투하고 있는 삶의 치열한 현장이기도 하다. 새벽부터 식당에 나와 말 그대로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고 일하던 사람이 낑낑대며 돌 위를 걷고 있는 이 젊은 여자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혹시 “쟤는 밥 잘 먹고 뭐하는 짓이야?”라고 코웃음을 치지는 않을까? 분명히 이건 치기다. 작가도 인정한다. 하지만 아티스트가 치기를 부리지 않으면 누가 부릴 것인가.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라면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하겠지만 뉴욕의 아티스트는 이런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 맞는 셈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땅과 인간의 걷는 행위에 대한 근원적인 관계,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민사회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융화 시키려는 희망을 담았다고 이해해주면 감사하겠다”고 그날 32가를 오갈 행인들에게 부탁한다.
강경은씨는 5월 7일부터는 브루클린 ‘A.M 리차드 갤러리(328 Berry Street, 3rd Floor)’ 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퍼포먼스 비디오 ‘해피 버스데이’와 기타 설치작품들이 전시된다. 오프닝은 5월 7일 오후 6시, 작가와의 대화는 6월 5일 4시부터. <박원영 기자>
한국에서 보내 온 돌을 딛으며 맨하탄 거리를 걷는 작가의 퍼포먼스 ‘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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