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버지니아 로턴에서 남편이 아내와 딸의 목을 졸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웨스트포인트 출신의 엘리트인 49세의 이강선이라는 사람은 47세의 아내와 15살 된 딸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고 고백했다.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주위에서 모범 가정이라 생각하는 그들에게 이런 끔찍한 사건이 왜 일어났을까.
워싱턴 포스트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활발한 부동산 거래로 안정된 생활을 해오다가 요즈음 계속되는 경기 침체는 많은 경제적 부담을 가져온 데다 어렸을 때 입양해온 딸의 교육 문제로 심하게 다투는 적이 많았다고 한다. 입양한 아이가 아니더라도 내가 낳은 아이를 키워가면서도 부모가 겪는 마음고생은 많다. 부모들이 조용히 아이를 타이르던 목소리가 아이의 말대꾸와 더 커지는 목소리는 무례함으로 높아지고, 분노와 질책에 찬 목소리가 온 집안을 꽉 채우게 된다. 그런 일들은 아주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본인들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다고 돌아서지 않는다면 이 전쟁은 부부 싸움으로 번지고 때로는 마치 부인이 데리고 온 자식처럼, 어떤 날은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아이처럼 감싸며 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부싸움으로 번져 엉뚱한 얘기까지 나오고 사네 안사네까지 나오게 된다.
언젠가 친구에게 얘기했지만 우리 생에서 엄마들이 제일 많이 우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 아이들 때문인 것 같다. 가끔은 아이들 때문에 생긴 심한 부부 싸움은 아이도 남편도 모두 보기 싫어지게 만들고, 바로 폭발 일보 직전의 마음은 자신 스스로도 컨트롤이 힘들어지고 할 수만 있다면 어딘가 숨어 버리고 싶어진다. 누구의 말처럼 남편은 화성에서, 틴에이저 아이들은 목성에서 와서 이들 외계인들이 모두 다른 나라 말을 쓰고 있어 지구에 사는 나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11학년이던 어느 날 그들의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집 아이들 둘 다 그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침에 천사 같은 얼굴로, 학교 밖에 모르는 듯 착한 얼굴로 학교로 갔는데 왠 일...? 놀란 가슴 진정하고 학교로 간 나는 얼마 전 사준 딸의 차를 두리번거리며 주차장에서 찾았다. 물론 차는 그곳에 없었고, 지금처럼 휴대전화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라 연락할 길이 없었다.
학교에 아이들이 오는 대로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오면서, 하루 종일 걱정으로 애태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슨 일이 생긴걸까 하며 나는 새삼 차 사준 것을 후회하며, 처음 차를 사주자고한 남편조차 원망하던 그날 족히 10년이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저녁에서야 집에 돌아온 두 아이는 쇼핑센터에 갔었고 영화 구경도 하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태연스럽게 딸은 대답한다. 엄마, 우리가 마약을 한 것도 아니고, 감옥에 잡혀간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흥분하느냐고. 그래서 우리한테 미리 얘기를 하지 그랬냐고 했더니, 자기들이 미리 얘기했으면 엄마가 그곳에 가게 했겠느냐고 했다. 어디에서 스피치 강의를 받은 사람처럼 아들은 언제 어디서나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나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한다. 지금은 의사가 되고, 미국 방송국을 다녀 자기 앞가림을 하니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그들과의 연결고리는 끝이 없는 것 같고, 결혼을 해도, 또 아주 멀리 살아도 눈만 뜨면 또 궁금해 하고 걱정이 따라다니니 도대체 나는 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전생에 진 것일까?
부부가 하도 싸워서 사람들은 전생에 원수끼리 만난 것이라고 우스갯소리 한다. 그런데 내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그 사람, 언제라도 더 못주어서 안쓰럽고, 또 모두를 주어도 밉지 않은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무슨 놈의 걱정의 빚을 갚아도 갚아도 모자라서 내 눈 감는 날 까지 갚아주고도, 떠나기 전에 남은 것 모두 던져주고 그것도 모자라 애 태우며 떠나게 하는 자식들이여, 당신은 전생에 누구셨습니까.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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