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우아한 여인의 몸짓과도 같은 야자수. 산호초의 예살에 못 이겨 까르륵거리는 바다. 갓 스물 된 처녀의 살갗처럼 맑고 투명한 하늘. 사람들은 이런 자연의 유혹에 이끌려 하와이를 찾는다. 파라다이스와 같은 그곳에 잠시 나의 인생의 짐을 푼 적이 있다. 인생 행로에는 갓길도 있고 샛길도 있음을 그때 알게 되었다. 유학 와서 MBA까지 마친 남편이 대로(大路)를 마다하고 샛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동업자의 제의에 뛰어든 샛길은 그야말로 협곡이었다. 하지만 협곡에는 더러 폭포수와 야생초가 있듯이, 인생의 샛길에도 풋풋한 인간미와 다듬어지지 않은 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첫 비즈니스로 시작한 스토어는 오하우 섬 귀퉁이 동네 안에 쏙 들어가 있었다. 그 스토어는 몸에 칼슘이 다 빠져버린 노인처럼 서 있었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뼈대를 다시 세우고 석고보드를 붙이고 페인트로 단장을 해댔다. 그랬더니 육탈한 노인이 회춘을 하듯이 건물이 그럴싸해졌다. 시름시름 앓고 있던 스토어가 회생을 하자 동네 사람들까지 덩달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오던 손님도 일 주일이 멀다 하고 드나드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매일 얼굴을 내밀었다. 어디 그뿐이랴. 외상 장부까지 만들어 놓고 그어대기 시작했다.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근 남태평양 섬에서 얼사덜사 꿈을 안고 왔다가, 막판에는 꿈도 뭣도 없이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우리 모두 같은 타국생활이었기에 깍두기처럼 툭툭 자른 영어도 대충 이해하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곤 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 ‘타방가’라는 아저씨가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깍두기 헤어스타일. 검실검실한 피부에 왕머루같은 눈동자, 무릎까지 오는 곤색 치마(남태평양 섬 남자들이 입는 정장)에 쪼리(발가락을 끼는 슬리퍼).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스러운 미소.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즐거워지곤 했다. 그도 고향을 떠나 올 때는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는 하와이 섬들 중 하나 정도쯤은 소유하겠다는 포부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날 타방가 아저씨는 그나마 끌고 다니던 슬리퍼를 벗어던진 채 맨발로 스토어에 들어섰다. 평생 발을 완전히 덮는 신발을 신어 보지 않은 아저씨의 발가락은 갈퀴처럼 엉성하게 벌어져 있었다. 검실검실한 피부는 늦은 오후의 햇빛에 반사되어 반질거리는 야생흑마를 연상케 했다. 투박하게 생긴 손과 발에 비해 치아는 유난히 가지런했다. 한 치의 틈도 없는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며 웃는 그의 모습은 일품이었다. 그에게도 궂은 날이 분명 있을 터였지만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그 날도 그는 언제나처럼 밝은 모습으로 가게를 들어서면서 물었다.
“액스(ax) 있어요?”
나는 생소한 물건을 찾는 타방가 아저씨에게 아리송한 눈빛을 던졌다. 뭐든지 물으면 즉각 물건을 찾아주는 백퍼센트 고객 만족 서비스에 길들여져 있던 이 아저씨의 눈빛도 아리송해졌다. “거 있잖아요. 요리할 때 쓰는 거.” 하면서 다시 한 번 ‘액’ 자에 젖먹던 힘까지 동원해 꾹 누른다. 나는 그제서야 ‘아하!’ 하며 감을 잡았다. 남태평양 섬 사람들은 ‘루아우’라는 고급 요리를 할 때 오븐 대신에 땅을 파서 구덩을 만들고 기름진 고기를 타로 잎사귀로 정성스럽게 싸서 굽는다. 그 구덩을 파기 위해서 도끼를 사용한다. 나는 스스로의 추리력(?)에 감탄하며 다시 백퍼센트 고객 만족 서비스에 입각하여 설명을 덧붙였다.
“아하, 도끼(ax) 말씀하시는군요. 그런데 도끼를 사려면 전문스토어에 가셔야 할 텐데요. 지금은 우리가 도끼를 취급하지 않지만, 다음에는 아저씨를 위해서 두어 개 정도는 꼭 비치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착착 감기는 나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타방가 아저씨는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엊그제까지만 해도 우리 스토어에서 분명히 도끼를 팔았다는 것 아닌가! 나는 다시 백퍼센트 고객 만족 서비스 정신에 입각하여 동업자가 새로운 상품으로 도끼를 들여 놨나 싶어, 이 구석 저 구석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지만 도끼는커녕 망치도 보이지 않았다. 도끼 찾기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을 때 타방가 아저씨의 부인이 스토어에 들어섰다. 차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지쳤던 모양이었다. 나는 “어쩌죠? 아무리 찾아도 도끼(ax)가 없어요.”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부인은 서글서글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도끼요? 호호호, 액스(도끼)가 아니고 에그(달걀) 사오라고 했어요!”
찌그러진 토끼눈에 턱을 반쯤 떨어뜨리고 있는 나에게 타방가 아저씨는 영어 문법 한마디를 가르쳐주고 나갔다.
“당신 그거 알아요? 원 에그(one egg:달걀 한 개), 투 엑스(two eggs: 달걀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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