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임에서 한 친구가 한국에서 건너 온 따끈따끈한 얘기라며 미국 사는 남자들도 개를 한 마리씩 꼭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니, 그녀의 말인즉 옛날에는 이사 갈 때 냉장고를 가져가서 남자들이 냉장고 문만 꼭 잡고 있으면 함께 갔는데, 요즘은 냉장고를 버리고 가니 개를 꼭 껴안고 있으면 틀림없이 새 집에 함께 이사 가게 된다는 것이다.
조크(Joke)라지만 씁쓸하다. 어쩌다 우리 남편들의 위상이 이렇게 흔들리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 부터인가 경제권이 흔들리면서 아버지의 존재도 조금씩 흔들렸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랫동안 생의 전부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부모들의 삶의 저울에서 내려와 묵묵히 제 갈 길을 떠났을 때, 그 허전함은 부모의 생에 갑작스런 우울로 찾아들게도 한다. 그래도 여자들은 보기보다 강해서 이런 사실들을 잘 받아들이나 남자들은 혼자 많은 생각을 하다 때로는 세월의 버거움을 식구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코트 깃에 감추고, 삶의 모든 시름들은 뒷주머니에 넣어두고 내색하지 않는다. 가끔은 술의 힘을 빌려 현실의 고달픔을 잊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은 가장(家長)이라는 이름을 항상 기억하고 커다란 멍에를 어깨에 짊어지더라도 휘청거리며 매일의 생활을 이어간다.
남편은 일하는 사람, 돈 벌어오는 기계쯤으로 가족들이 생각해도 그에게는 가정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안식처요, 낙원인 것을 가족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오래전 우리 집에서 우리는 커피 잔만 달랑 들고 커피를 마셨어도 아버지 커피는 예쁜 잔에 받침까지 놓고, 혹시라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다시 부엌으로 가서 닦아서, 두 손으로 쟁반에 받쳐 들고 그렇게 아버지를 어려워하지 않았던가. 밥을 떠 담아도 항상 아버지 주발이 우선이었고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까지 가족이 모두 기다렸다 아버지가 식사를 시작하시면 우리도 모두 식사를 시작했다.
나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들의 책임은 언제라도 어깨가 휘어지게 무겁고, 그래도 생전 불평 한 마디 없이 참으시며 말없이 가족을 돌보시던 사랑에 가족 전체가 감사하고 공경했었다. 아버지는 언제라도 가족의 중심에 계셨고, 항상 제일 먼저 모시는 어른이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아버지들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 같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수고한 아버지들의 경제력이 흔들리고, 나이 들어가며 머리마저 희끗희끗해 질 때 식구들마저 아버지를 외면한다면 얼마나 허전하고 슬픈 일인가.
여기 오래전 신문에서 본 아버지 사랑 얘기를 하나 소개한다. 직영 대리점을 운영하던 용이 아빠는 IMF 바람이 불면서 장사는 안 되고 결국 사채까지 쓰면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집도 결국 차압을 당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이혼을 원하고, 그 후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돈을 받을 사람들의 고소로 그는 경찰에 쫓기는 도망자가 되고, 할 수 없이 아이들은 부모님께 부탁하고 숨어 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용이가 소변에서 피가 나온다고 할머니께 얘기했다.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한 후에 의사 선생님은 용이가 아주 희귀병인 윌슨 병에 걸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용이의 상태가 많이 나빠서 한 달을 보장할 수 없으며 가족 중에 장기를 기증할 사람이 곧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의 병원에 나타났다. 용이 아빠는 아들이 많이 아프다니깐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 했다. 경찰에 잡히는 것도 무섭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있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아들부터 살려야 한다는 마음만 들어서 경찰에 자수하고, 그 대신 아들 수술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어느 때라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우리 아버지들, 많은 표현이 없으셔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신 우리 아버지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야겠다. 사람들은 꽃이(아이들) 예쁘다, 잎(엄마)도 아름답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땅속 깊이 자신을 낮추고 있어 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꽃과 잎이 잘 자라도록 양분을 주는 뿌리(아버지)의 노고를 언제라도 잊지 말아야겠다. 이 땅에 ‘아버지’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