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아들만 둘이 있다. 큰 애는 올 봄에 대학을 졸업했고, 작은 애는 이제 대학 2학년이다. 딸이 없어 집사람에게 좀 미안하지만, 둘에게는 서로 친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어 둘 다 사내인 것이 오히려 더 괜찮은 것 같다. 함께 운동도 하고 몇 시간씩 앉아 비디오 게임도 같이 한다. 부모에게는 감추는 비밀 얘기도 서로 나누는 것 같다.
지난 주에 작은 애가 학교로 돌아가야 하기에 내가 직접 데려다 주기로 했다. 1학년 때는 백인 룸메이트와 단 둘이 한 방에서 살았는데, 2학년 때는 우연이지만 한인 학생들 여럿과 모여 살게 되었다. 1학년 때는 룸메이트가 작은 냉장고 하나를 가져왔기에 괜찮았지만 2학년 때는 어떨지 몰라 하나 구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사이즈가 작은 것은 그다지 비싸지도 않기에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3년은 쓸 수 있도록 새 것을 구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큰 애가 자꾸 새 것 보다는 중고를 사주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로부터 돈 얼마 안주고도 쓸만한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냉장고를 다른 학생들로부터 구하려면 일반적으로 학년 말 짐정리 할 때 해야 하는데 학년 초라서 사기 힘들 것이고, 새 것 자체가 값이 얼마 안 나가니 그냥 새 것으로 구하자 했는데도, 계속 중고를 사도 괜찮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급기야, 동생 일이니까 이제 네가 참견하지 말라는 필자의 핀잔이 서운했는지 큰 애가 날카롭게 반응을 했다. 뭐라고 했다가는 괜시리 필요 없는 언쟁이 될 것 같아 참았다.
그러면서 필자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큰 애가 대학 생활하는 4년 동안 새 냉장고를 사 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큰 애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갑자기 큰 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늘 차별하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언젠가 누가 필자에게 누구에게 정이 더 가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사실 둘째라고 대답한 적은 있다. 정이 더 간다고 큰 애를 덜 사랑하고 둘째를 더 사랑한다는 그런 의미는 결코 아니다. 둘째가 막내이어서, 그리고 평소에 막내 짓을 해왔기에,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큰 애 보다 손이 더 가는 둘째에게 마음이 더 쓰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두 애들을 키워 오던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둘째에게 이것저것 미안한 것이 많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큰 애 때와 비교해보면, 키우면서 지금까지 둘째를 찍어준 비디오나 사진들의 분량이 확연히 적어졌음을 느낀다. 옷도 큰 애는 항상 새 옷이었지만, 작은 애는 큰 애 것을 종종 물려받아서 입었다. 돌잔치도 큰 애 때는 많은 손님들을 초청해 치렀는데, 둘째 경우에는 가족들과 단출하게 하고 말았다. 일부러 차별을 두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둘째 때가 되니 기운도 좀 빠졌고, 좀 더 철든 부모 모습을 보이느라 좀 얌전히 돌을 치렀던 것 같다. 이래저래 그래서 둘째에게 미안한 감이 제법 있다.
그런데 아이 둘을 놓고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면 사실 큰 애에게 더 미안해야 한다. 왜냐하면 큰 애가 태어나서 첫 3년 반 동안은 자기가 집안 식구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가 어느 날 태어난 동생 때문에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큰 애의 마음에는 분명히 일종의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작은 애야 태어날 때부터 형과 나누어 사랑을 받아왔기에 전혀 이상할 게 없었겠지만,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겼다고 느꼈을 큰 애에게는 분명히 큰 충격이 있었을 것이다.
둘째 애가 태어난 지 몇 주 안 되었을 때였다. 하루는 큰 애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작은 애를 숲 속에 갖다 버리잔다. 숲 속에는 호랑이, 늑대 그리고 이리 등 무서운 동물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반문에 그러면 토끼와 사슴, 다람쥐가 있는 곳에 버리고 오면 되지 않느냐고 답하던 큰 애였다. 그만큼 동생의 출현이 쇼크였던 것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큰 녀석에게 미안한 생각이 지금도 든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큰 애는 자라면서 지금까지 동생에게 손찌검 한 번 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 두 아이를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갈 때면 별생각 없이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그냥 모두 집는 동생과 달리 꼭 가격표부터 먼저 확인해 보고 장난감을 골랐던 큰 애였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우리 속담처럼 늘 동생보다 나은 형 노릇하느라 힘들었을 큰 애가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변호사
훼어팩스 카운티 광역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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