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우 칼럼 - 밴 클라이번의 피아노 경연대회
1958년이면 니키타 후르시초프 소련 수상겸 공산당 제1서기 시절 미국과의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였다. 그해 4월에는 모스크바에서 최초의 국제 차이코프스키 음악경연대회가 개최되었다.
당시에 23세이던 미국의 밴 클라이번(Van Cliburn)이 최우수상을 타게 되어 타임지의 표지 인물이 되는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대성하는 길이 열렸다. 그가 귀국했을 때 뉴욕에서는 고층 빌딩에서 갖가지 색종이 조각들을 그의 환영 차량 행렬에 뿌리는 소위 틱커테입 퍼레이드(Tickertape parade)마저 전개되어 음악인으로서 전무후무한 존재가 되었다. 워낙은 루이지애나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때부터 자기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운 클라이번은 텍사스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후 줄리아드 음악대학을 갔던 탓인지 전 세계적으로 연주 여행을 다니지만 살기는 텍사스 포트워스(Fort worth) 부근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1962년에는 포트워스 부근의 음악선생들과 시민들이 밴 클라이번 재단을 설립하고 그의 이름을 딴 국제 피아노 경연대회를 4년마다 개최하게 되어 2009년에는 13회 경연대회가 열렸다.
밴 클라이번에 대해 옛날에 읽었던 것의 기억을 더듬고 인터넷을 통해 좀 더 알아보게 된 동기는 이번 수요일 밤 메릴랜드 공영방송(PBSMPT)에서 13회 경연대회에 관한 1시간 반짜리 프로그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수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참석하여 성경 연구를 하고 돌아오면 밤 9시 반이 넘는데 우연히 TV 리모컨을 이곳저곳으로 돌리다보니까 채널 22번에서 이미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을 시청할 수 있었다.
29명의 피아니스트들이 예선에 응해 12명이 준결승에 오르고 결승에는 6명이 남아 금은동메달을 두고 하는 최종 결승이 있는 과정을 그들의 개인 선택곡과 지정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2번 등등을 치는 장면들을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의 설명과 곁들여 보여주는 게 정말로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정도였다.
그런데 첫눈에는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일본인의 눈이 좀 이상하다 싶었다. 영어를 못하기에 통역이 따라 다니는 것이라 생각했더니 연습 장면에도 피아노에 악보가 없는데다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그의 팔을 끼고 교향악단이 앉아 있는 앞자리의 피아노로 그를 인도하는 게 아닌가.
추지 노부유키(20세)는 맹인이다. 3주 동안이나 경쟁자들은 여러 집에 홈스테이를 하면서 공연장에 왕래하는데 최종 결승 며칠 전에는 일본에서 역시 영어를 못하는 그의 선생이 도착하여 그를 격려한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를 치고 났을 때 그의 부모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물론 청중석에도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그가 끝내고 지휘자의 부축으로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청중석을 향해 절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사위원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시력을 주지는 않으셨지만 완전한 귀와 기억력을 주셔서 그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하셨으니까 어찌 눈물 없이 들을 수 있느냐고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을 때 나는 아내에게 저 청년이 꼭 일등을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결과는 역시 그러했다. 우선 심사위원장이 금년에는 동메달이 없다고 하면서 은메달로는 한국 여자 손열음(23세)을 발표한다. 금메달은 두 사람에게 공동으로 수여 되는 바 중국 청년 장 하오첸(19세) 그리고 바로 노부유키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들의 연주는 아직까지도 www.cliburn.tv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한편 결승에 나간 6명 모두 우수한 피아니스트들로 그들에게는 3년 동안 연주회 여행을 보장하는 상품들이 주어져 그 가치는 각각 100만 달러가 넘는다는 것이다.
1960년 장면 정부 시절 정경화, 정명화 자매와 함께 피아노 트리오로 청와대와 일본 여러 도시에서 연주까지 했을 정도로 피아노 유망주였던 김경희를 빨리 결혼하자고 졸라 1962년에 나와 결혼하는 바람에 게다가 나의 가난한 배경 때문에 그의 음악 기회를 영영히 막아버린 나로서는 음악 프로그램을 볼 적마다 죄스러운 생각이 든다. 나를 위로하느라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아내는 하루에 8시간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되게 자기를 해방시켜 준 해방군이란다. 해방군은 아니더라도 아내에게 더 잘해주려고 노력해서 나의 미안한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줄일 수 있으면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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