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엔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넓고 풍성한 어머님의 가슴이 제일 먼저 찾아졌다. 짓궂은 머슴아이들이 장난을 쳐 서러움이 닥쳐 올 때면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으니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달려가 엄마한테 누구누구가 나를 약을 올렸다고 다 털어 놓아야 억울한 마음이 풀렸다. 그러면 엄마는 무조건 내편이 되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때로는 맛있는 것도 주시며 나의 마음을 달래 주시곤 하셨다.
가정은 이 사회의 가장 기초적이며 원초적인 단체요, 집단이다. 그 속에서 웃음도, 눈물도, 행복도 함께 나누며 공동체로 살아가며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위로해주며 생활해 가는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너무도 복잡하고, 지극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밖에서의 스트레스를 털어 버릴 곳이 없이 집으로 끌어 들이지 않으면 안 될 급변 하는 세대를 살면서 따라 잡지 못하면 뒤처지는 혼돈 속에서 현대인들의 마음은 항상 무겁고 조급하며 괴롭기만 하다. 성인병의 대부분이 이 스트레스 에서 온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의학, 과학자들, 결국 마음의 병들이라는 것이다.
이 병을 이겨 보겠다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운동, 식사 관리, 대체 의학, 식품 의약 등 참으로 많은 처방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신념처럼 강한 묘약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직장에서 상사들한테 치이고 동료로 부터 상처를 받은 피로한 몸은 어디서든 잠시 쉬면 재 충전이 될 수 있으나 마음은 다르다.
서글픈 마음 쓰린 가슴은 육체가 쉰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든 털어 놓고 싶은 생각, 내말을 다 듣고도 나를 원망, 책망 하지 않고 잘 했다고 감싸 안는 엄마의 가슴과 같이 넓고 포근한 곳, 이런 곳이 요구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부딪쳐야 할 아내나 남편, 철없이 제 멋대로 떠들어 대는 아이들, 금방이라도 되돌아 나오고 싶은 집이지만 그래도 참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신념은 불확실한 내일을 확신 하는 힘이다. 불가능 할 것 같지만 가능한 것으로 믿는 원동력이요, 미래를 보는 눈이며 심장의 박동을 멈추지 않게 하는 전극이다.
불굴의 신념을 가져 보자, 거기에 넓은 가슴, 여유 있는 가슴을 만들어 보자. 여기에 아내를 품고 남편을 감싸 주고, 아이들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마음이 쉬어 갈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정이라는 최소의 단체를 만들어 보자.
정영희
중앙결혼/ 워싱턴 수필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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