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은 베테란스 데이(재향군인의 날)였다. 세계사적으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었던 대전이 종식 되었던 1918년 11월11일을 기리기 위하여 1938년 5월13일 연방의회가 기념일을 제정한데서 비롯된다.
당시에는 종전일(Armistice Day)로 명명되었으나, 6.25에 참전하였던 재향군인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1954년 6월1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개칭 법안(HR7786)에 서명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베테런스 데이 즉 참전용사의 날로 칭하여 지게 되었다. 그러니 미국의 베테란스 데이는 한국전쟁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베테란스 데이 즈음 어느날 출근길 주유소에서 ‘Korea Veteran’이라고 수놓아진 모자를 쓴 노인과 마주쳤다. 첫 인상이 ‘저 연세에 아직도 운전을 하시다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령이었다. 해군장교로 병역을 마친 나는 본능적으로 노병에게 거수경례를 올렸고, 그는 장군처럼 절도 있게 답례하여 주었다.
주유를 하면서 어떻게 그 이상의 ‘보은’을 할까 궁리 끝에 내가 경영하는 판촉물 업체에서 제작한 2014년 캘린더와 필기도구 몇 점을 선물하였다.
주유를 마친 그는 나의 자동차를 주차공간으로 옮기라고 하더니, 30분에 가깝도록 네 가장자리가 닳을 대로 닳은 군복무 기록증을 보여주며 한국전에 참전하였던 ‘무용담’을 마치 어제 귀환한 병사처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아울러 의사인 아들과 약사인 한인 며느리 그리고 일곱 살 난 손자사진까지 보여 주었다. 올해 83세로, 자신을 프레드 F.로 소개한 그는 한국과의 ‘끈끈한’ 인연은 운명이라고 했다.
평일 오전 출근길이기에 오래 머물 수 없어 가까운 시일 내에 재회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노병을 다시 만났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43에 세상을 떠나면서 소년기에 아버지 뒤를 이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리고는 21살 되던 해 징집영장을 받아 쥐게 된다. 듣도 보도 못했던 먼 나라, 전쟁터로 떠난다고 말하면 상심할 것이 뻔한 어머니와 8살 아래 동생에게는 알래스카에서 복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본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쟁터로 ‘밀쳐지게’ 된다.
사우스 저지에 있는 기지 포트 딕스에서 8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이수한 9사단 60보병부대는 전투가 한창인 1952년 2월 한반도로 이동하여 9개월간 최전선에 투입된다. 당시 치열하였던 중부전선 전투 상황을 그는 ‘최전선에서 쓴 시’로 담아냈다.
“로켓 포화가 온 천지를 뒤덮고 있다 / 우리 진지에 떨어지지 않을까, 초조한 심정으로, 로켓포의 반복적인 공격에 반격을 가한다 / 살을 에는 추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 아니면, 생명을 부지하여 다음 전투까지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병사의 수는 5만4,236명, 부상자는 10만3,000명, 행방불명자 8,177명. 전쟁포로 7,000명 중 생환병사가 3,450명밖에 되지 않았다. 51%가 포로수용소에서 병사하였던 것이다.
프레드 F. 병사가 한국전에 투입되었을 때 필자는 7살이었다. 그의 참전으로 지금껏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까운 시일 안에 재회하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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