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집 장만에 들뜬 김모씨 부부는 최근 LA 한인타운 한 신축 콘도 오픈하우스에 들렀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럭서리한 주방이 마음에 쏙 들었다. 가격이나 사이즈 등도 무난했다. 둘 다 한인타운에 직장이 있어 러시아워를 걱정할 필요까지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일 수는 없을 듯. 하지만 그들은 ‘라스트 타임’에 매입 오퍼 넣기를 포기했다.
그들의 결정을 뒤바꾸게 만든 것은 ‘학군’이었다. “집은 한 번 마련하면 몇 년은 살아야 하는 데 쌍둥이 아이들이 2년 뒤 타운에서 중학교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당최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대형 샤핑몰들과 여러 개의 한인 마켓들, 다양한 맛집들과 분위기 있는 카페, 휴식에 제격인 찜질방까지 거의 모든 편의시설이 몰려있는 한인타운은 주거지로써 어느 때보다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다. 외곽에 거주하던 올드 타이머들은 자녀들이 성장한 이후 타운으로 하나 둘 복귀하고 있으며 할리웃에 인접한 지리적 특성에 주류사회 젊은 아티스트들과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한인타운에 전입신고를 하는 추세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10년 전과 비교할 때 타운에 주택을 소유한 한인은 2~3배 이상 늘었다. ‘한인 타운=히스패닉 타운’이라는 공식은 옛말이 됐다. 노른자 지역의 경우 테넌트의 70~80%가 한인으로 채워진 아파트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인이나 백인들의 유입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타운의 집값이나 아파트 렌트는 LA카운티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한인이 늘고 생활여건이 개선됐다고 해도 학령기 자녀를 둔 한인 학부모에게 타운은 여전히 ‘부적격 주거지’일 뿐이다. 초등학교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학교 진학을 앞둔 한인 부모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립은 마음에 들지 않고 사립을 보내려니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타운 학부모들은 매그닛스쿨 혹은 차터스쿨을 선호한다. 차터스쿨이란 주로 학부모, 교사, 지역단체 등이 공동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일종의 대안학교다. 일반 공립학교에 비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실제 주정부 학력 평가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내고 있다.
한인타운과 인근 지역에도 일반 공립학교를 대체할 만한 우수한 차터스쿨이나 매그닛스쿨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학생 수요에 비해 학교는 턱 없이 모자라다 보니 입학은 ‘바늘구멍’이다. 한인 학부모들 사이에서 꽤나 알려진 L 차터스쿨의 올 가을 학기 입학 신청 현황을 보면 유치원은 30명 모집에 1,400여명이, 중학교는 20명 모집에 무려 660여명이 몰렸다. 매그닛 스쿨도 마찬가지다. 타운에서 가까운 명문 L 중학교의 경우 150명 정원에 900명이 넘게 원서를 접수해 그야말로 피 튀기는 경쟁을 펼쳤다.
이들 학교의 추첨이 있는 매년 3~4월 타운에 거주하는 한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희비가 엇갈린다. 그나마 여건이 되는 한인 학부모들은 추첨에서 떨어지면 기를 쓰고 ‘이사’라도 가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은 학부모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타운에 좋은 매그닛이나 차터스쿨이 더 생겨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 예산난 등을 이유로 LA통합교육구는 이런 대안학교 신설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타운의 한 한인 학부모는 “당장 외곽지역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어디 말처럼 쉬운가”라며 “이런 사정도 모르면서 어떻게 타운 같은 곳에서 학교를 보내냐는 주변의 비아냥 섞인 말까지 들으면 속이 더 상한다”고 털어놨다.
공교육 여건이 좋지 않은 한인타운을 떠나는 학부모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맹모삼천지교’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살기는 더 팍팍해진 세상에서 모두 ‘맹모’가 되기 힘든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사통팔달의 교통 여건과 다양한 편의시설로 주가가 높아진 한인타운, 이제는 좋은 학교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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