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만달러 직장 그만두고 401(k) 털어 종자돈 시작... 건강식 선호에 대인기
▶ 거리에서 매장으로 전환... 작년 매출액 600만달러
[금융위기 때 창업 ‘멕시큐’ 성공스토리]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이어진 리세션을 거치면서 미국의 일부 대도시에 때 아닌 창업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주역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들이었다. 하지만 손에 쥔 돈이라곤 직장 은퇴연금 401(k)가 전부였던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생계형 창업종목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IMF 대란 이후 서울의 뒷골목에 포장마차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던 것처럼 LA와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대도시에서도 간이 이동식당인 푸드트럭이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푸드트럭은 단순한 생계형 사업에서 벗어나 요식업 분야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인기 창업종목으로 자리를 굳혔다. 위키피디아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물론 캐나다와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매일 25억명이 푸드트럭과 같은 이동 간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비즈니스 섹션에 머리기사로 소개된 푸드트럭 창업 성공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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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실레이스의 ‘도박’은 ‘대박’으로 이어졌다. 여섯 자리 숫자의 연봉을 받으며 미국 굴지의 세일즈와 마케팅 업체에서 근무하던 그는 2010년 안락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맨해턴 거리에서 멕시코 음식을 판매하는 푸드트러커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계획을 발표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은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했고,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 연봉 15만달러짜리 직장을 푸드트럭과 맞바꾸려는 아들의 ‘밑지는 셈법’을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변의 부정적 반응에 낙심했지만 실레이스는 창업의 꿈을 접지 않았다. 직장 은퇴연금인 401(K)를 털어 종자돈을 마련한 그는 트럭을 몰고 거리로 나섰다. 그로부터 불과 5년만인 지금, 실레이스와 그의 동업자 토머스 켈리는 2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3개의 ‘멕시큐’(Mexicue) 식당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든든한 후원자도 찾았다. 1972년 ‘루비 튜즈데이’(Ruby Tuesday)를 창업, 2012년까지 그곳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요식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 샌디 비올이 지분 참여를 통해 멕시큐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멕시코 전통음식과 바비큐가 주 종목인 멕시큐의 매출액은 창업 첫 해인 2010년의 50만달러에서 2014년에 600만달러로 늘어났다. 실레이스와 켈리는 2017년까지 매출액을 최소한 2,000만달러로 끌어올리기 위해 1년 내에 2개의 체인을 추가할 계획이다.
두 창업주는 맨해턴 공원의 영세매점으로 출발해 요식업계의 거목으로 성장한 ‘셰이크 셱’(Shake Shack)을 그들이 추구해야 할 사업모델로 삼고 있다. 올해 뉴욕 증권시장에 상장된 이 회사의 시장가치는 10억달러 이상으로 평가됐다.
멕시큐가 짧은 시간에 푸드트럭에서 번듯한 ‘맛집’으로 변모한 비결은 건강식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초점을 맞춘데 있다.
가능하면 지역 토산물을 구입함으로써 신선한 천연 식자재 확보에 주력했고 항생제나 호르몬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고기를 구입했다. 식자재 준비부터 요리까지 전 과정을 직접 일괄 처리하다 보니 고객들에게 적정가격의 건강식을 신속히 제공할 수 있었다.
요식산업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건강식 시장의 틈새를 공략해 대박을 터뜨린 ‘치포틀레 멕시칸 그릴’(Chipotle Mexican Grill)의 성공 비결을 그대로 차용한 셈이다.
마케팅 자문업체인 NPD 그룹의 식당전문 분석가 보니 리그스에 따르면 치포틀레와 같은 패스트-캐주얼 식당을 찾는 고객들의 수는 지난 2009년 이후 리세션이 정점에 도달했던 해를 포함해 매년 7~9% 늘어났다. 반면 전통적인 패스트푸드점 출입 고객 수는 같은 기간 답보상태에 머물렀고 중간급 패밀리 레스토랑의 경우 하락세를 보였다. .
실레이스는 어려서부터 사업가적인 기질을 보였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뉴저지주 홈델에서 성장한 그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이웃들을 상대로 직접 만든 레모네이드와 빵, 케익, 비스킷 등을 팔아 용돈을 벌었다.
2004년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뉴욕으로 건너가 T-모빌, 포레스트 파머슈틱스와 인테그라 라이프 사이언시스 등 ‘포천 500대 기업’에서 세일즈 사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커리어는 2009년 대학 동창을 만나기 위해 LA를 방문하면서 일대전환을 맞게 된다. 불고기 브랜드 트럭 앞에 음식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퍼뜩 깨닫는 ‘각성의 순간’을 맛보았다.
이 컨셉을 뉴욕으로 가져간다면 5만달러 정도의 자본만으로도 창업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한 그는 지체 없이 동업자와 주방장 물색에 나섰다. 실레이스는 주말 디너파티를 열어 친구들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취미인 친구 토머스 켈리를 설득해 동업자로 끌어들였다.
1978년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난 켈리는 어린 시절부터 요리에 대할 열정이 남달랐다. 그의 놀이터는 키친이었다. 어머니와 할머니 곁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식사준비를 돕는 게 그에겐 최고의 놀이였다.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인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2001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낮에는 마케팅회사에 근무하고 밤에는 크래프트와 허스 등 유명 레스토랑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하며 요리솜씨를 다듬었다.
동업에 합의한 실레이스와 켈리는 각자 주머니를 털어 총 8만달러의 자본금을 마련한 후 이베이에서 중고 푸드트럭을 구입하고, 멕시칸 바비큐 메뉴를 작성하는 등 일사천리를 개업을 준비했다.
이들이 트럭을 몰고 무작정 거리로 나설 당시 맨해턴에서 영업 중인 다른 브랜드의 푸드트럭은 단 한 개뿐이었다.
경쟁이 별로 없는 이른바 ‘블루오션’(blue ocean)이라 처음 몇 달 간은 원하는 곳 어디에나 차를 세우고 맘 편히 영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사를 시작한 첫 해부터 하나 둘씩 경쟁자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2011년 말에는 무려 75개 브랜드의 푸드트럭들이 맨해턴의 곳곳에 진을 쳤다.
맨해턴 식당주들은 푸드트럭들의 거리 영업으로 매출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며 관계당국에 규제를 요청했고 이들의 잇단 진정은 결국 ‘노점상’ 단속강화로 이어졌다.
실레이스는 매일 새벽 목이 좋은 지점에 지프 체로키를 세워둔 채 ‘영업팀’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한 번은 15명가량의 인근 식당주들이 멕시큐 푸드트럭으로 인해 매출이 떨어졌다며 그가 탄 차량을 둘러싼 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지만 실레이스는 트럭이 올 때까지 악착 같이 버텼다.
맞춤한 명당 자리를 도시 정비트럭이 선점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럴 때마다 실레이스는 트럭에 적힌 회사 번호로 전화를 걸어 차량을 곧바로 옮기지 않으면 토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곤 했다. 시 직원을 사칭한 그의 꼼수는 늘 통했고 그의 트럭은 원하는 장소에서 영업을 할 수 있었다.
2011년 겨울폭풍으로 영업에 큰 지장을 받자 실레이스와 켈리는 악천후에 취약한 푸드트럭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7가 애비뉴에 테이크아웃을 주로 하는 450평방피트 규모의 멕시큐 식당 1호점을 개점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푸드트럭은 음악축제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장으로 영업무대가 제한됐다.
멕시큐는 거리에서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실레이스는 여세를 몰아 5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 브로드웨이에 1,200평방피트 규모의 제2매장을 열었고, 루비 튜즈데이의 창업주 샌디 비올이 멕시큐 지분의 25%를 사들이며 멕시큐의 기세에 기름을 부었다. 멕시큐는 지난 4월 맨해턴에 3호점을 추가했다.
마케팅 리서치사인 민텔의 줄리아 갈로-토레스는 멕시큐처럼 푸드트럭이 불과 5년 만에 3개 체인을 거느린 식당으로 탈바꿈한 것은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지적대로 2007년부터 시작된 장기 경기침체 이후 창업 붐을 주도했던 대다수의 ‘원조’ 푸드트럭 오너들은 지금도 거리에서 음식을 팔고 있다.
푸드트럭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택하는 종목이 아니다. 가진 돈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만만한 창업 업종으로 통하지만 줄리아는 “쉽게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친다”고 경고했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에서 열까지 영업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사업주가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피로감이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다. 기력을 탕진한 영업주는 창업 후 얼마 되지 않아가 두 손을 들고 나자빠지기 일쑤라는 지적이다.
결국 승패는 제 풀에 무너지기 전에 이동식당을 신속히 붙박이 매장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거리 장사를 통해, 그것도 단시간 내에 식당 개장에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확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줄리아는 “본인에게 비즈니스 백그라운드가 있고, 실전경험이 풍부한 요식업주의 뒷받침을 받는다면 성공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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