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의 구조개혁 가운데 그나마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꼽으라면 금융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월 금융개혁의 키를 잡은 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개혁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일성을 내놓았고 금융의 자율책임 정착, 실물지원 기능 강화, 금융산업 경쟁력 배가 등의 개혁 목표를 제시했다. 이어 금융개혁회의, 금융개혁추진단, 금융개혁자문단, 현장점검반으로 구성된 ‘3+1’ 개혁체제도 구축했으며 자산운용사·벤처기업 업계 등 현장 실무자들을 직접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자본시장 개편방안을 비롯한 개혁정책도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전대미문의 초저금리와 핀테크의 출현 등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때 나온 금융개혁에 시장의 플레이어들도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정부마다 금융개혁을 주창했다.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의 통폐합이 단행된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 허브,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 등 정권마다 금융에 대해 혁신을 외쳤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초라하다. 20년 전과 비교할 때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 우간다 수준의 금융이라는 자조적인 탄식이 나오는 현실이다.
역대 정권들은 금융을 정권 차원에서 추진하는 산업정책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금융이 라이선스 산업으로 어느 국가에서나 정부의 입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간섭의 정도를 볼 때 우리나라는 최상위권이라 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정책이 달라지고 ‘코드금융’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금융권은 정권의 입맛을 맞추는데 급급해 왔다. 지난 정권의 ‘녹색 금융’이 대표적인 예다. 정권이 드라이브를 걸자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비슷비슷한 녹색 금융 상품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녹색금융도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지금 유행처럼 번지는 기술 금융도 기존의 금융 풍토라면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자명하다.
정보기술(IT)·자동차·조선 등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도 여전히 우리 경제의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산업들은 지난 1970~1980년대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뒷받침과 더불어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끈기 있게 추진해 온 기업인들이 어우러져 토대를 깔았던 것이다. 금융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강조하듯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적어도 10% 정도를 차지하고 국민의 노후와 복지를 책임지는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통제방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더 이상 제조업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 산업으로 바라보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13~14세기 지중해 무역을 선도하던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서구의 금융문화는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다. 오랜 신용의 역사 속에 농축된 금융 DNA가 오늘날 글로벌 금융의 토양이 됐다. 압축은 있어도 생략은 없다. 후발주자가 가지는 이점은 단계를 생략하는 것이 아니라 기간을 줄이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금융 선진국 가운데 우리와 같은 퇴행적 소유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없다.
금융개혁의 핵심은 관치의 금융문화와 왜곡된 소유구조를 바로잡는 데 있다. 그동안 금산분리 등으로 초래된 금융회사의 소유 공백을 정부가 메워왔다. 정부가 경영에 간섭하고 입맛에 맞는 경영진을 골라왔다. 이러한 행태 속에서 장기적 안목에서 발전전략을 짜고 리스크를 떠안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금융회사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금융은 네트웍과 사람이 기본이다. 투자에 대한 결실이 나오기까지 적어도 5~10년은 걸린다. 임기 3년짜리 최고경영자에게 이런 결정을 내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자본과 경영능력을 갖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임종룡호의 금융개혁에서 이 부분은 빠져 있다. 물론 자칫 잘못 꺼냈다가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담론이 될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근본적인 문제를 덮어두고 변죽만 울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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