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은 한국, 기모노는 일본, 치파오는 중국의 전통 복식을 일컫는 이름이다. 복식학에서는 이런 전통 복식을 민족복, 혹은 내셔널 드레스라 부른다. 그러나 미국에는 내셔널 드레스가 없다. 각국에서 이민온 이들이 일상에서도 입는 전통 복식이 다양하게 비칠 뿐이다. 미국에서 16년째 살면서 느낀 것은 미국 사회는 그 사회가 가진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나는 이 점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았으면 한복을 얼마나 입었을까? 아이들을 미국에서 키우면서 오히려 한복을 입을 기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해마다 애들 학교의 인터내셔널페어에서 결혼할 때 장만한 녹의홍상을 입고 발런티어를 했는데 한복을 본 다른 나라 부모들은 다들 한복이 예쁘다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이게 기모노라는 거냐?”고 물어본다.
1990년대부터 파리의 세계패션무대에 진출했던 한복디자이너 이영희씨는 “키모노코레가 아니라 한복입니다”라는 부제를 단 자서전을 출간했다. 한복을 알리는 데 가장 처음 다가온 장벽이 이 옷이 ‘기모노’가 아니라 ‘한복’임을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 많은 서구인들이 한복을 기모노라 할까?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는 일본풍, 쟈포니즘 패션이 만연했고, 일본 메이지정부는 ‘기모노’라는 용어를 일본 옷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유럽에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그 역사가 벌써 150년이나 되었다.
우리는 그때 그럴 여유가 없었다.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한국 디자이너가 파리에 진출했고, 이제 한류 열풍을 타고 한복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니 먼저 알려져 있던 기모노와 옷 구조가 비슷한 한복을 보고 서구인들은 기모노라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복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늦었다고 좌절하기보다는 나는 긍정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싶다. 역사는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으며, 앞으로의 미래는 현재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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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씨는 서울대 의류학과에서 발해복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전주 기전여대 전임강사, 서울대 강사를 역임했다. 2000년 미국으로 온 후 LA 게티미술관과 SF 아시안아트뮤지엄 등에서 강연하며 한복이 지닌 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데 기여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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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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