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성 회장KBFD-TV
`소탐대실' 좌우명으로 미국에서 한인 유일 공중파
TV 방송국으로 한국 대중문화 확산, 민간 외교사절 역할
한인 인구 4만여 명이 채 안 되는 미국에서 한국인 소유 텔레비젼과 신문, 라디오 매체를 갖고 있는 지역은 하와이가 유일하다. 특히 공중파 텔레비전을 한인이 소유한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KBFD는 미주 유일의 한국인 소유 공중파 텔레비전으로 다민족 사회 미국에서 한인사회 위상을 높임은 물론 한국의 대중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알리는데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 한류 진원지는 하와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하와이 한류돌풍을 일으킨 주역으로 KBFD와 정계성 회장을 꼽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 미주한인 이민 200년 역사를 만들어가는 후손들에게 한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한 정계성 회장(84)의 발자취는 해외 한인 이민자들의 자긍심을 높인다.
부산 경남고 출신의 정 회장은 1954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수학 중 미 센트럴 미주리주립대로 유학와 학업을 마치고 귀국, 공군장교로 주한 미합동군사 고문단장 부관 겸 국방부 연락장교로 복무를 끝낸 후 1973년 하와이로 이주해 왔다.
정 회장은 2009년 5월, 모교인 센트럴 미주리 대학 졸업식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측은 ‘KBFD-TV’와 ‘TAN’ 네트워크 등을 통해 하와이에 한류열기를 주도하고 미주 지역에 한국문화를 알린 공로를 높이 평가해, 졸업생인 정 회장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 대학의 설립 년도인 1871년 이래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으로 기록됐다.
한류열기를 상상도 하지 못했던 1970년대 중반 태평양 한 가운데 조그만 섬 하와이에서 텔레비젼 방송국 채널을 소유하고자 마음먹었던 그의 패기와 혜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정 회장은 1975년 무역업으로 재미를 보던 시절, 당시 1주일에 30분간 방송되던 한국어 방송국이 어려움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 오늘의 KBFD 탄생의 시작이라고 회고한다.
KBFD 의 출발은 1975년. 당시 1주일에 30분간 방송되던 한국어 방송을 인수해 1975년 `한국의 소리(Voice of Korea)'방송을 개국하면서부터이다. 어려운 방송국을 인수하고 1980년 오시아닉 케이블을 임차해 방송시간을 1일 8시간으로 늘렸다. 1985년 약 80만 달러를 투자해 채널을 구입하고 방송사 설립 허가권을 받아냈다. 1986년 KBFD-TV 방송국을 개국해 1987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FCC)로부터 TV 방송 면허를 획득, UHF 채널 32번을 배정받아 공중파로 시간제한 없이 TV방송을 시작하는 역사를 이루었다. 정 회장은 "당시 한국인 소유 방송국을 설립하기 위해 동포들이 한 마음이 되어 서명운동에 동참하며 큰 힘을 보태 주었다"고 회고한다. "한국일보도 당시 센추리 스퀘어 빌딩 옥상에 안테나를 세우는 역사적인 현장을 촬영, 보도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방송국 뉴스 프로그램 보도에 많은 협조를 해 주었다"며 "그 일이 바로 어제 일 같은데 벌써 내 나이 80을 훌쩍 넘었으니... 살아보니 나 혼자서 되는 일은 없다"며 양보하고 화합하며 서로 돕는 삶의 자세를 강조한다.
1991년에는 LA에 거점을 확보하고 한국어 위송방송인 TAN TV를 개국해 미주 한인사회에 위성방송시대를 열기도 했다. 정 회장의 한류열기 점화의 혜안은 미국 내 한인 방송 사상 최초로 1988년부터 영어 자막 방송을 시작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 팬클럽이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조직되어 한국을 방문하게 되고 미주한인이민100주년 기념사업 성공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불어 닥친 한류열기는 텔레비젼 전파를 타고 하와이 주민들의 삶의 변화를 주도하게 된다. 한동안 로컬 주민들에게 KBFD에서 한국 드라마가 상영되는 저녁 8시 시간대를 방해하는 것은 금기사항이 되기도 했다. 그 덕분에 하와이에 한국어 강좌와 한국요리 강좌가 만원 사례를 이루며 한국음식이 더 이상 외식이 아닌 주식으로 자리하는 등 다민족 사회 하와이 생활 풍속도가 변화하고 있다
정 회장은 10여년 전 2남 2녀 자녀들 가운데 한국으로 출가한 장녀를 제외하고 둘째 딸과 막내 아들에게 사장과 부사장으로 KBFD 운영을 맡기고, 장남에게는 LA TAN TV 운영을 성공적으로 넘기고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 불심이 깊은 불자이기도 한 정 회장은 요즈음 정원 가꾸기에 심취해 있다. 부부가 손잡고 하루 일과를 거의 함께 한다는 정 회장은 적은 것에 욕심을 부리고 집착하면 큰 것을 잃는다는 `소탐대실'을 마음에 새기며 인생의 황혼기를 즐기고 있다. 해외 한인 이민역사의 큰 획을 그은 정 회장은 한국일보 하와이 창간 45년 역사 뒤안길과 그 의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동포사회 원로의 한 사람으로 특별히 당부와 격려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인생 지나고 보니 한 순간입니다. 가정이나 이웃간에 무엇보다 커뮤니티가 서로 화합하며 정을 나누고 살기도 아까운 시간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서로 돕는 한인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언론인으로서의 솔선수범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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